목요일, 5월 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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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체험 론 – 3. 광명

3, 광명

이 체험은 빛의 체험이다. 역시 세 종류로 다 가능 하다.
어두운 밤에도 빛 아래 글을 읽을 수 있으며 눈이 부시게 비취는 빛을 보기도 한다.
때로는 주위와 얼굴과 의복이 눈보다 더 희게 빛나는 때도 있다.

1)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빛에 대한 기록은 성서에 풍부하다.
옛날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 하였더라 아론과 온 아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모세가 그들을 부르니 아론과 회중의 모든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말하고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드라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멸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고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지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출 34:29-35) 하였다.

이 일을 사도 바울은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고후 3:7-8)고 증거 하였다.

예수께서 산상에서 변형하신 일에 관하여 마태는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 졌더라” (마 17:1-2) 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는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빛을 보았으니 이에 대하여 누가는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써 빛이 저를 둘러 비취는지라” (행 9:3) 라고 소개 하였다.

또한 스데반이 순교할 때의 얼굴도 천사의 얼굴과 같았으니 성경은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행 6:15) 고 증거 하였다.

교회의 역사 가운데 빛 비추임을 체험한 성자들의 수는 그 수를 헤 일 수 없을 정도이며 근년에도 물론 없지 않다.
성도들이 기도 드릴 때는 하나님과 대좌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빛이 나타나시기도 하며 그 빛의 반사로 성도의 얼굴과 몸과 의복에서 빛을 보기도 한다.
성령의 권능으로 성도들이 지극히 거룩하여지는 변화가 있을 때는 성도 자신의 성화 된 그 인격에서 빛나게 되는 때도 있다.
결국 하나님은 불이시니 그의 불의 권능이 임할 때 빛의 역사가 함께 하는 것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불에는 힘과 빛과 열이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에도 이 세가지가 있어 때에 따라 힘과 열로 또는 빛으로 역사 하신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의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겔 43:2) 하였고,
사도 요한은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드라” (계 1:13-16) 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다 (계 4-5장 참조) 하였고, 하나님의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계 21:23-24, 22:6)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올 때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 지더라 (계 18:1) 고 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빛으로 계시고 빛으로 역사 하신다.

2) 악령도 빛으로 나타나는 일이 물론 있다

옛날 두로왕에 대하여 하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사단이 된 천사에 대한 말씀이 있으니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광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 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 되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 하였도다” (겔 28:13-14) 하였으나,
그의 범죄로 쫓아낸 일에 대하여 “네가 지음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 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들어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 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 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좇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 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움으로 마음이 교만 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렵혔읍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 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겔 28:15-17)하여 그를 하늘에서 땅에 던져 버리신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바벨론 왕에 대한 말씀 중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서 올라 하나님의 뭇 별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 우리로다” (사 14:12-15) 라고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 하셨다.

곤 두로 왕과 바벨론 왕을 책망 하실 때 저들이 하늘에 있다가 땅에 쫒긴 사단을 닮은 자들로 묘사함인데 그 사단을 별, 그룹 계명성으로 이름 하여, 빛이 있고 빛 가운데 곧 화광석 가운데 왕래하던 자들이라 하셨다.

이는 그들이 빛이었음을 보이신 말씀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 칠십 인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내어 항복 받은 말씀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눅 10:18) 하셨고
사도 요한은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계 12:3-4) 하였으며

또 “하늘에서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 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니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 라고도 하고 사단 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계 12:7-9) 하였으며

또한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햇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지니” (계8:10) 와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쇄를 받았더라” (계 8:1) 는 이상의 모든 말씀은 악령 곧 사단도 빛으로 떨어지는 빛과 관계 있음을 밝히 증명한다.

사도 바울은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 하는 자 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그들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후 11:13-15) 하여 사단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악령들도 빛으로 가장하여 나타나며 그들이 빛으로 나타날 때 그 영을 받았거나 관계되는 자들은 그 빛 가운데의 체험도 하며 또 그들 자신의 모습에서도 어떤 빛을 보게 되지마는 유다가 말한 바와 같이 유리하는 별들 (유 13) 의 빛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3) 인간적으로 광명을 경험한다.

모두 잘 아는 바와 같이 유교와 불교의 성자들에게 그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은 성령의 역사도 아닌 순 인간적 수양에서 경험 되어 지는 체험인데 이것을 그들이 광명이라 한다.

그리하여 성자들의 초상을 그리는 사람들도 그 초상의 머리 위에나 또는 머리 뒷면에 둥근달 같은 것을 그리어 그들의 거룩한 빛을 표시하고 때로는 온 몸 주변에 햇빛을 그리어 전신에서 발산하는 거룩한 빛을 표시 하기도한다.
이 빛은 사람의 마음세계와 육체와 의복이며 심지어 자연계의 어두움까지 밝게 할 수 있다.

성령의 역사 일 때는 신의 세계까지 비추어 준다. 쉽게 말하면 순 인간적인 때에도 각자의 수양 정도에 따라 그 얼굴의 빛이 차이가 생긴다.
얼굴에 나타나는 그 수양의 정도에 따라 나타나는 그 빛이 더 깊게 될 때 안광이 빛난다.
기도하는 기독교 신자들도 성령의 감동으로 은혜에 가득한 기도가 되어 질 때의 자기 얼굴은 기도가 잘 되어지지 않을 때의 자기 얼굴과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은혜가 가득한 때의 그 얼굴이 보다 더 깊은 기도의 은혜에 들어가게 될 때 그 얼굴은 천사의 얼굴같이 빛나게 된다.
기도자의 얼굴의 빛은 물론 하나님의 빛에 의한 것이지마는 은혜를 얻은 그 자신이 거룩하여지는 은혜로 그 마음과 몸이 설화 될 때에 발하는 빛은 은혜 받은 자신에게도 빛을 발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성령을 모르는 인간의 수양에서 발하여지는 인간의 빛이 있음과 같은 이치이다
인간에게는 빛이 있다. 누구에게든지 있다. 인간의 얼굴은 마음과 성격의 표시판이다.
악하고 간사하다든지 의롭고 진실하든지 그대로 얼굴에 표시된다.
인간은 크게 나누어 선과 악, 이 둘로 나누인다. 마음에 선과 악의 여하에 따라 각기의 얼굴에 밝고 어두움으로 표시된다.
이 선과 악의 양극에 빛과 어두움이 있어 인간의 선과악의 극에 이를 때 그 얼굴에 빛과 어둠도 그 극에 이르러 표시된다.
성경도 죄를 주홍과 진홍같이 붉다 하였지만 그 죄를 고하여 용서 될 때에 눈보다 양털보다 희게 하였다 (사 1:18) 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 하셨고
바울은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살전 5:4-5) 라 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 곧 어두움에서 회개하여 나온 신자 즉 인간 자체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었다.
거룩한 신자는 빛이 있다는 말이다.

저자가 아는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매일 성경을 읽으며 기도 중에 신령한 체험을 하였다.
그는 청년 때 출가 아닌 출가로 약 수년을 지날 때의 일이다. 만주 동포들을 시찰하고 서울에 돌아왔다.
김 익두 목사님이 시무하는 숭동 교회의 전도실과 성전에서 밤 낮을 기도와 찬송으로 은혜 가운데 지냈다.
초교파 적으로 전도 하던 중 5월경 00감리교회 낮 부흥회 시간에 참여 하려고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온 교회 안의 성도들이 일시에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5월에 동복을 입고 들어간 자기를 이상히 여김인 줄 알았다.
그리고 낮 강의가 끝나자 모든 분들이 그에게 가까이 와서 매우 조심스러운 표정을 하였다.
그는 나를 정신병자로 알아 조심하는 것이리라 생각하였다.

그때 한 온유하고 인자한 목사 한 사람이 그를 자기 집으로 강권하여 데리고 갔었다.
그는 그 목사님의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앗!”하며 놀라 자기도 모르게 몇 발자욱을 뒤로 물러섰다.
이는 목사님 댁 마루에 걸려있는 체경에 비취는 자기의 얼굴과 의복에서 눈부신 빛을 본 까닭이었다.
그때 그 목사님은 “온 청중이 형제를 일제히 돌아보게 된 이유를 이제 알겠오?” 하며 주목하는 그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고여 있었다.

누구든지 성경과 기도로 은혜가 충만 할 때에는 이 같은 빛이 그에게 있을 것이다. 여기 한 가지 첨언 하고자 한다.
사실에 있어 신비의 체험은 자기와 하나님과의 비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없는 한 말하지 않는 것이다.
경솔히 말을하면 자기에게 그러한 체험이 줄어들고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교통에 보다 그 신비에 몰두하는 경향을 가지게 한다.

대구에 한 큰 교회의 여전도사가 있었다.
그는 자주 저자에게 들려 자기는 광명의 은사를 받지 못 하였으니 버린 자식이 틀림없다면서 늘 번민 하고 있었다.
어느 하루는 내방하여 울었다. 그 이유 인즉 자기도 기어코 광명의 은사를 받고자 각오하고 자기 교회 아래층에서 이른 새벽부터 열심히 광명을 간구하고 있었다 한다.

온 방안에 밝은 빛이 가득하여 이제는 되었다 하며 기뻐하였으나 사실은 누가 전깃불을 켜 두었더라면서 울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신비 이야기를 들으면 바른 기도를 떠나 그 체험만 얻으려고 노력하다가 잘못되는 일이 얼마든지 있음을 주의 하여야 할 것이다.

이 광명의 체험 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상이 없으며, 영계와 물질계의 공간의 제한이 없이 비추어 주며, 그 빛의 질과 양에 따라 또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그 빛의 지향에 따라 각양 각이 한 체험을 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악령의 빛에 속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애당초 광명의 체험 욕에 빠지지 말고 성경과 기도로 거룩하여 지는 일에 전념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