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4월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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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원 추정의 근거(증거)들

1. 언어학적 증거

그럼 먼저 언어, 곧 말에 대해서 보시면,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민족의 기원에 대한 가장 중요한 증거는 바로 언어입니다.
왜냐하면 민족(民族)이라는 것은 어족(語族)으로 분류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는 알타이어에 속하고, 알타이어라고 하는 것은 터키 아라랏산 근처가 발원지입니다. 또 현재 알타이어에 속하는 말은 터키어, 몽골어, 만주어, 그리고 우리 한국어 등등입니다.
이러한 언어들에는 유사한 말이 대단히 많습니다. 한 예로 중앙아시아에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등 ‘—-스탄(stan)’ 이라는 나라가 대단히 많습니다. 이 스탄이라는 뜻이 사전에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이 영어의 ‘Land’ 곧 ‘땅’ 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민족이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땅이라는 글자를 ‘ㅅ당’ 으로 표현을 해 왔습니다. 발음대로 읽으면 ‘스땅’ 입니다. 그러다 이제 쌍 디귿으로 통일해서 ‘땅’ 으로 발음하게 된 것이지요.
이것이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고, 그 외에도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의 연구는 한국인의 조상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출발했고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시베리아와 몽골을 지나 만주 땅에 정착했으며, 그 후 한반도, 일본까지 뻗어갔다고 하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오른 쪽 그림은 바로 알타이어의 발원지인 터키의 아라랏산 근처의 마을입니다. 과거의 어느 때인가 우리 조상들이 이 근처 어딘가에 살았을 가능성이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2. 흑요석의 분포

두 번째 한국인의 기원의 대단히 중요한 증거는 흑요석이라는 특수한 돌의 분포입니다. 화살이나 칼 등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재료가 바로 이 흑요석이라는 새카만 돌입니다(왼쪽). 그것을 깨어 가지고 그 파편을 이용해서 도루코 칼처럼 사용하는데요, 갈아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깨면 생선비늘처럼 납작하게 벗겨지듯 깨어집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바드 대학같은 최고의 대학병원 외과의사들이 스텐레스로 된 수술셋트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고 흑요석 수술세트를 더 선호합니다. 그러면은 더 정확히 되고, 수술 후 회복에도 훨씬 더 요긴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이 흑요석으로 만든 화살 촉, 칼 등등이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중앙아시아, 몽골, 만주, 한반도 그리고 미국 인디언 주거지역까지 그대로 연결되어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데 이 흑요석이라는 것이 전세계 아무데서나 생산된다면 이것은 어떤 민족의 기원을 찾아가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될 것입니다. 모든 땅에 다 난다면 말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흑요석이라는 돌은 터키의 아라랏산 근처에서만 생산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되었던 돌을 아메리카 인디언에게서 발견되었다는건 터키에서 돌을 가지고 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요즘 같으면 터키에서 흑요석을 수입해 가지고 한국에서 만들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수입, 수출이라는 형태가 아닌 까마득한 고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몽골, 만주, 한반도의 주민들이 흑요석을 썼다는 사실은 바로 과거 어느 때인가 아라랏산 근처에서부터 민족의 운명을 바꿀 중대한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에 먼 여행을 떠나면서 흑요석을 잔뜩 등에 짊어지고 가면서 조금씩 사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위의 그림은 흑요석으로 만든 연장들입니다. 이와 같이 갈지 않아도 옆으로 탁 치면 벗겨지듯 나오는 비늘 모양의 파편을 조심스럽게 쥐고 가죽같은 것들을 싹 그리면 도루코 칼 보다 더 잘 나갑니다. 바로 아주 날카로운 연장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오른 편 그림은 아라랏 산인데 이 아라랏 산 근처에서만 흑요석 돌이 나기 때문에 어느 민족이 쓰고 있건 여기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진속에 서있는 돌은 흑요석은 아님)

3. 황토 매장 문화

세 번째로 우리 민족이 장례 시에 시신을 묻었던 매장문화가 민족의 기원을 연구하는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고대 한국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황토로 덮어서 매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황토를 구하기 힘들어서 유족들이 관의 일부만 황토를 뿌리고 나머지는 주변에 있는 보통 흙으로 덮어버립니다. 그러나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끝까지 황토로 덮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국인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붉은 흙 곧 오클라(okla)로 사람을 매장하는 문화는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중앙아시아, 몽골, 만주, 한반도 등에 이르기까지 다 이러한 풍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부터 대륙을 건너서 인디언까지 아직도 이 붉은 흙을 오클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 예로 미국의 오클라호마 라고 하는 주 이름도 인디언 말로서 붉다, 혹은 붉은 땅이다, 붉은 땅에 사는 사람이다 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오클라 라고 하는 흙의 사용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메리카까지 넘어갔고, 말까지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도 물감 중에 황토색을 오컬, 오클러 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말입니다.

오른 쪽 그림은 죽은 사람을 오클라, 곧 황토로 매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데 우리나라 옛날 그림이 아니고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매장 풍습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이와 같이 똑같은 매장문화가 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새, 깃털 숭배문화

또 하나의 한국인의 기원을 알 수 있는 문화적 증거는 날개 혹은 새(鳥) 숭배문화입니다. 고대 한국인들은 새와 날개를 매우 숭상했기 때문에 족장이 죽을 때는 깃털로 싸서 붉은 흙으로 매장을 했었습니다. 또 우리 민족의 깃발도, 지금은 태극기입니다만, 원래 우리 민족 고대의 깃발은 신성한 새 (봉황[鳳凰]새)를 그린 ‘봉도등(鳳圖騰)’을 사용하였습니다. 또 우리 민족의 장관들, 관료들은 그 계급을 새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이 그 이름을 작위라고 해서, 공작, 후작, 자작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한 새의 이름들이 바로 우리 민족의 관료의 이름에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중국인이나 다른 민족이 배워 간 것이지요.

그리고 이 깃털 숭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중앙아시아, 몽골, 만주 한반도를 거쳐 미국 인디언들까지도 관찰됩니다. 특히 미국 인디언들이 깃털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은 서부영화를 통해서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완전히 깃털로 뒤덮여서 나오는 것이 인디언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날개나 깃털, 새를 숭상했을까요? 그 이유는 날개라는 것은 바로 천사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를 간단하게 표현하다 보니까 천사의 몸체 중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날개이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날개는 바로 천사의 날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를 숭상하는 것, 거기서부터 기원된 것이 날개 숭배사상인 것입니다.

왼쪽그림은 독수리의 활기찬 날개의 모습이지요. 오른 쪽 아래의 그림은 고구려(高句麗)의 고대(古代) 고분(古墳)에서 발견된 그림입니다. 우리 민족은 높은 사람들의 무덤에 반드시 신성한 새 (예를 들면 지금 이 그림과 같은 봉황(鳳凰)새…)를 그려 놓았습니다. 그것도 동서남북 중에서 죽은 사람이 쳐다보는 가장 중요한 방향인 남쪽에다가 새 그림, 즉 천사의 날개를 그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천사의 인도를 받아 천상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소망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오른 쪽 그림 역시 고분(古墳)의 남쪽에 그려져 있는 신성한 새입니다. 붉은 색 때문에 붉을 주(朱) 자를 써서 주작(朱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마는 봉황에서 기원된 것입니다. 그래서 좌 청룡(靑龍), 우 백호(白虎), 남 주작(朱雀), 북 현무(玄武) 하지 않습니까? 반드시 남쪽에 새가 앉아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쳐다보는 가장 중요한 방향이 바로 남쪽입니다. 가장 중요한 곳에 천사가 지키고 서 있는 것이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봉황(鳳凰)새의 수컷은 봉(鳳)이고 암컷은 황(凰)입니다. 그래서 선배한테 얻어먹을 때 남자 선배를 붙들었을 때는 봉(鳳) 잡았다 라하고 여자 선배를 붙들었을 때는 황(凰) 잡았다고 해야 합니다. 봉황이라는 것은 이와 같이 수컷, 암컷 한 쌍을 말하는 것입니다.

5. 무궁화 숭배문화

다섯 번째로 한민족의 기원을 따지는 중요한 문제가 우리 민족의 국화인 무궁화, 무궁화 숭배사상에서 나옵니다. 무궁화의 학명(學名)은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Hybiscus syriacus)’입니다. 여기서 보시듯이 원산지가 우리나라가 아니고 메소포타미아 중동에 있는 시리아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궁화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시면 ‘the Rose of Sharon’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샤론의 꽃’입니다. 이것은 아가서에도 나오듯이 ‘샤론의 꽃’, ‘샤론의 장미’ 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에 과거에 급제한 어사에게 씌워주는 어사화도 바로 무궁화입니다. 그리고 화랑들이 쓰고 다니던 모자에 달려 있던 꽃 그것도 무궁화입니다. 그러니까 무궁화가 실제로 활용되고 있던 것이 신라시대부터 이미 확실히 나와 있고, 단군의 이야기에 보면, 그 때 이미 무궁화의 한자식 표현인 목근화 씨를 가지고 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나라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을 보십시오. 대통령의 뒤쪽에 대통령을 나타내는 문장을 보시면, 중간에 무궁화가 있고, 좌우에 봉황새 두 마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천사가 좌우에서 호위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무궁화가 한 가운데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이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선하고 지혜로운 분만 앉아 있다면 이 민족이 급속히 발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왼편 그림은 현재 우리나라 국화로 쓰이고 있는 분홍색 무궁화를 보여 드리고 있습니다. 꽃잎은 분홍색이고 중간은 빨갛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꽃술이 달려 있는 것이지요.

무궁화 장식은 우리 민족이 고대 때부터 여러 군데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 민족의 높은 지위에 있던 여인들이 사용하던 고급 거울 (동경; 銅鏡)로 이 거울 전체가 무궁화 모양을 본 따서 만들어 놓았습니다(오른 편 그림).

또 우리나라의 훈장 중에 최고의 훈장, 그것은 무궁화 대훈장입니다. 이것은 대통령급 이상의 사람들에게만 주는 최고의 훈장입니다(아래 왼쪽). 그런데 이 무궁화대훈장을 오른쪽에 확대해 놓은 것을 보십시오(아래 중간), 노란 부분이 꽃입니다. 그리고 붉은 부분은 형상화해서 크게 빼낸 것이지요. 그리고 중간에 보시면 화랑들이 쓰는 모자가 있습니다. 모자에 장식된 것이 무궁화입니다. 전체도 무궁화고 장식도 무궁화여서, 무궁화로 뒤덮인 이것이 우리나라 최고의 훈장인 것입니다.

무궁화의 학명(學名)이 말하듯이 무궁화는 중동에 대 제국을 이루었던 시리아, 인류 최초의 문명인 에블라 문명의 발상지, 그 나라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위 오른쪽).

왼쪽 그림은 시리아의 정궁(正宮), 가장 큰 궁전의 장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큰 기둥들이 있고, 전체를 무궁화 장식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크게 확대를 해 보면 오른 쪽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군(軍)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부대대장쯤 되면은 소령이지요? 소령이 무궁화 꽃입니다. 무궁화가 소령 무늬하고 같습니다.

아래 왼쪽 그림은 시리아 정궁을 멀리서 본 것입니다. 이렇게 기둥들이 있고, 그 기둥 밑에 무궁화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발코니같이 생긴 난관, 이것도 무궁화 잎으로 장식해 두었습니다. 또한 외성 (바깥성벽)도 무궁화 잎으로 장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아래 중간).

메소포타미아를 떠나서도 흑해연안 곧 한민족이 이동해 왔을법한 이동경로를 따라 살펴보면 무궁화들이 끊임없이 피어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아래 오른 쪽).

 

 

 

 

6. 복식, 의상의 분포

기타 우리 민족의 기원을 추정할 수 있는 것으로서 도기 등의 유적 분포는 생략하고 의상의 분포를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왼쪽 그림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그려놓은 기마민족(騎馬民族)의 기상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말 타고 다니던 민족들이지요. 흔히 우리민족을 농사를 짓던 농경민족으로 역사학자들이 잘못 가르치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아래 가운데 그림은 몽골사람들의 기마민족(騎馬民族)의 위상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중앙아시아 그리고 몽골에 이르기까지 기마민족들이 지배를 해 온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이 몽골의 말타기 좋은 핫바지, 승마바지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아래 오른 쪽 그림은 우리 민족의 고대 고구려의 고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고분에서도 이 승마바지, 핫바지의 그림을 볼 수 있고, 또한 신라에까지도 연결됩니다. 곧, 신라 경주의 천마총에 보시면 천마가 그려있는 말안장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은 임금의 무덤인데요, 천마가 그려진 말안장은 자작나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자작나무는 북방 시베리아쪽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이것은 곧 메소포타미아를 떠나서 몽골 만주 한반도를 거쳐오면서 기마민족(騎馬民族)들이 북방 아시아를 지배하고 다스려 온 것이고 그 후예가 신라에까지 내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민족은 북방에서부터 내려온 기마민족(騎馬民族)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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