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4월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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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기원

  앞에서 보신 바와 같이 여러 가지의 글자로 만들어진 것이 한자(漢字)인데요, 처음에 수많은 한자(漢字)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그 기원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연구한 사람이 B.C. 86년경의 중국의 한문학자인 허신(許愼)이었습니다. 한자의 기원을 밝혀내서 쓴 책이 설문해자(設文解字)라는 책인데, 지금까지 알려진 4000여 개의 갑골문자 중에서 1000개 정도의 기원을 서술하였습니다. 허신(許愼) 나름대로의 기원을 밝힌 것인데 이때는 이미 도교(道敎)사상이 만연하던 때여서 도교(道敎)적 선입관을 가지고 한자(漢字)의 기원을 밝혔기 때문에, 진짜 한자(漢字)의 기원(起源)이라고는 간주할 수 없습니다. 한자(漢字)의 진짜 기원은 미궁(迷宮)에 빠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른 쪽 그림이 최초의 문자인 갑골문자(甲骨文字)입니다. 갑(甲)은 거북이 껍질이고요, 골(骨)은 짐승들의 뼈, 뼈 중에 넓적한 뼈(아래 왼쪽 그림)에 여러 가지 글자를 만들어 쓴 것이 최초의 글자인 갑골문자(甲骨文字)인데 그 기원(起源)은 잘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갑골문자 뿐 아니라, 청동기(靑銅器) 그릇에도 글자를 새겨 썼습니다. 중국 최초의 한자(漢字)는 갑골문자(甲骨文字)나 청동기(靑銅器) 문자로서 존재해오고 있습니다. 중국 최초의 나라는 하(夏)나라이고, 중국의 두 번째 국가는 은(殷)나라, 즉, 상(商)나라라고도 부르는데, 오랜 세월동안 잊혀져오다가, 상(商)나라 시대의 갑골문자(甲骨文字)와 청동기(靑銅器) 문자가 지금부터 불과 100년 전에 중국에서 발굴되게 되었고, 그것이 가장 오래된 한자(漢字)입니다. 글자자체는 은(殷)나라 이전에 이미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중국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초의 중국의 시대를 전설(傳說)시대라고 합니다. 전설시대 다섯 왕은 황제, 전욱, 제곡, 요(堯), 순(舜)임금 다섯 왕이 있었고, 그 다음 왕조가 처음 시작된 것이 하(夏)나라인데, B.C. 2200년경에 세워져 500년 간 지속되다가 두 번째 나라인 은(殷)나라, 즉 상(商)나라로 바뀌었습니다. 은(殷)나라 시대의 많은 문명이 은허(殷墟), 즉 은(殷)나라 폐허(廢墟)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하(夏)나라 시대의 것은 발견된 것이 없고, 글자는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지금으로부터 3700여년 전에 중국인들이 기록해 놓은 갑골문자(甲骨文字), 청동기(靑銅器)문자가 가장 오래된 한자(漢字)입니다. 하(夏)나라, 그전에 순(舜)임금 시대에 이미 한자(漢字)가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200년 전에 한자가 처음 만들어졌다고 보는데, 놀라운 사실은 순(舜)임금 시대는 세계사(世界史)적으로 보면, 불과 수십 년 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바벨탑 사건이 터진 때입니다. 중국 최초의 전설적인 요(堯), 순(舜) 임금시대는 바벨탑 사건으로부터 수십 년 밖에 지나지 않았던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바벨탑 사건이나 그 이전 노아 홍수 사건, 창세기 사건에 대해 생생하게 들었거나, 직접 체험하여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순(舜)임금은, 하늘의 임금, 즉 상제(上帝)에게 제사를 드렸다고 공자(孔子)의 ‘서경(書經)’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국 최초의 제사(祭祀)에 대한 기록인데, 순(舜)임금 시대에 이미 제사를 드렸고, 그 때부터 상제(上帝)에게 드리는 제사가 4000여년 동안이나 지속되어 왔습니다.

  순(舜)임금 때부터 드려오던 중국인 최고의 제사(祭祀), 즉 상제(上帝)에게 드리던 제사는 여름에는 북쪽 끝에서 드리고,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 끝에서 드려서 국경제사(國境祭祀)라고 하는데, 요(堯), 순(舜) 시대부터 시작한 그 국경제사(國境祭祀)때 상제(上帝)에게 드리던 제사문(祭祀文)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대명회전(大明會典)에 기록된 ‘국경제사문(國境祭祀文)’을 한번 보실까요? “지극히 오래 전 태초에 공허하고 흑암의 큰 혼돈이 있었사옵니다. 다섯 행성은 아직 운행되지 않았었고 태양도 달도 빛을 발하지 않았었습니다. 거룩하신 신 상제(上帝)께서 이곳에 모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주께서 모든 만물을 만드셨사옵니다. 그리고 사람을 지으셨사옵니다. 당신의 능력으로 모든 만물이 지음을 받았사옵니다.”

위의 국경제사문(國境祭祀文)과 기독교인이 믿는 경전인 성경(聖經) 창세기(創世記) 1장의 내용과 비교해 볼까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리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장 1절-27절) 상제(上帝)를 창조(創造)의 신(神)으로 묘사함으로서, 국경제사문(國境祭祀文)의 내용과 창세기(創世記) 내용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른 쪽은 또 다른 국경제사문(國境祭祀文) 입니다. “모든 생물들이 당신의 뜻으로 말미암았나이다. 上帝시여, 인간도 만물도 모두가 당신의 사랑으로 이 낙원에 살게 되었나이다. 모든 생명체가 당신의 선하심으로 지음 받았사오니, 그 축복은 당신으로 말미암음이옵니다. 오 주시여, 당신만이 이 모든 만물의 참 어버이가 되시옵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에도 기독교 이외에는 이런 기도문이 없습니다. 제사문이라는 것이 결국 신(神)에게 드리는 기도문(祈禱文)인데, 바벨탑 사건이후 하나님을 기억하던 백성들이 동방으로 이주해온 후 하나님을 기억하며 드렸던 기도문으로 생각됩니다. 진시황(秦始皇)이 진(秦)나라를 세우던 B.C. 200년경까지 중국인은 2000여년 동안이나 유일신(唯一神)이요, 창조(創造)의 신(神)인 상제(上帝)하나님을 잘 믿어왔습니다. 상제(上帝)는 중국식 발음으로, ‘샹따이(혹은 샹띠)’인데 유대인이 부르는 하나님의 칭호(稱號) 중에서 ‘산(山)에 있는 하나님’을 ‘엘 샤따이’라고 부릅니다. 샤따이, 샹따이, 발음이 거의 같지요. 바벨탑 사건이후 혀가 꼬부라져 ‘샤따이’가 샹따이로 변한 것 같습니다.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믿던 샤따이 하나님을 최초의 중국사람들이 그대로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벨론과의 무역으로 막강한 부(富)를 축적하고 사병(私兵)을 길렀던 장사꾼 ‘여불위’의 아들 ‘여정’이 진시황(秦始皇)으로 즉위하면서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유일신(唯一神), 즉 상제(上帝)하나님을 없애야 진시황이 중앙집권 통치하기가 쉽다고 해서 엄청난 문화 종교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과거부터 상제(上帝)하나님을 잘 믿어오던 중국인들, 특히 학자(學者)들이 가만히 있지 않아서 굉장한 반대를 하자, 진시황은 가차없는 숙청을 단행했는데, 이것이 바로 ‘분서갱유(焚書坑儒)’사건입니다. 과거에서부터 내려왔던, 모든 책을 불태워 버렸는데 그 책들 중에는 상제(上帝)하나님에 관한 기록, 바벨탑의 기록, 창세기의 기록이 많이 있었을 것인데, 그 책들을 태워 버리고, 그래도 살아있던 학자들이 계속 저항을 하자 생매장해서 죽여 버렸습니다. ‘분서갱유(焚書坑儒)’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신앙적 차원으로 볼 때는 유일신(唯一神)을 잘 믿던 중국이 바벨론적인 바알적인 신앙으로 완전히 떠나버린 사건입니다. 그러고도 여기저기서 유일신 사상이 들어올까 봐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여러 정보, 즉, “민주화 하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라…” 하는 소리들을 차단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국민들을 강제노동 시킴으로써 반역을 일으킬 소지를 없애고,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했던 목적도 있지만, 실제로는 종교적-정치적 목적으로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은 것입니다.

  진시황(秦始皇)은 자기가 신(神)인 것처럼 살았고, 살려고 노력했지만, 중국인의 마음에 유일신(唯一神) 상제(上帝)사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회유책으로 상제(上帝) 신(神)도 인정하면서, 동서남북(東西南北) 각각에 더 중요한 신(神)이 있고 또 그 위에 태을신(太乙神)이 있고…… 라고 하면서 희석(稀釋)작전으로 들어 갔습니다. 처음에는 말살(抹殺)정책을 폈지만, 2000여년 동안이나 믿어오던 신앙이 없어지지 않자, 상제(上帝) 신(神)을 격하시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서남북의 신과 태을신(太乙神) 등 여러 신을 만들어서 거기에 더 매력을 느끼도록 국가에서 주도를 해 버리자, 세월이 점점 흘러감에 따라 중국 사람들은 여러 잡신(雜神)들 중에 하나가 샹따이(上帝) 신(神)인 것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진시황의 작전이 성공하였던 것입니다. 진시황 자신은 어마어마한 진시황릉을 만들고 수많은 장수들의 토용(土俑)을 만들고 죽었지만, 진시황 당대로 끝나버리고 다른 나라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진시황의 정책 이외에도 중국인의 종교심을 많이 변질되게 만든 사상 중 하나가 B.C. 500년경에 시작된 노자(老子)와 장자(長子) (오른 쪽 그림이 노자와 장자의 초상입니다. )를 중심으로 한 도교사상(道敎思想), 즉 Taoism입니다. 그리고 B.C. 500년경에 공자(孔子)가 태어나고 공자(孔子)의 유학(儒學)사상도 시작되고, 멀리 인도에서는 부처, 석가모니도 이 때쯤에 태어났습니다. 유교(儒敎)와 도교(道敎)는 진시황때 이미 300여년 유행하였고, 불교(佛敎)는 오랫동안 들어오지 못하다가 한(漢)나라 초, B.C. 100년경에 중국에 들어 왔습니다. 가장 늦게 들어온 사상이 불교(佛敎)입니다.

  진시황이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모든 종교적 기록을 다 불태운 줄 알았으나, 그 후 세월이 흘러 공자(孔子)의 허물어진 집을 수리하다가 벽 속에 숨겨둔 공자(孔子)의 기록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왼쪽 그림과 같이 대나무에 글씨를 써서 여러 개를 엮은 것이지요. 책(冊)字가 이래서 생겨난 것입니다.
공자는 산동성(山東城) 곡부(曲埠)의 동이족(東夷族) 출신 학자인데, 그의 저서(著書) ‘중용(中庸)’에서 제사(祭祀)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자기의 많은 학문을 토대로 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하늘과 땅에 드리는 모든 제사의식들을 통해 사람이 상제(上帝)를 섬기느니라.” 결국 제사(祭祀)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샹따이(上帝)’를 섬기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공자의 제자(弟子)중에 하나인 계로(중국말로는 치루)가 공자(孔子)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감히 죽음(死)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공자가 대답하였습니다. “우리가 아직 삶(生)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서 논할 수 있겠느뇨?”(孔子, 論語 11-11) 또 다른 제자가 물었습니다. “神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십시오.” 라고 하자,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데, 어찌 神에 대해서 논하겠느뇨?” 라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孔子는 이처럼 겸손하고도 上帝하나님을 잘 섬기던 사람이었는데, 후대의 사람들이 상제(上帝)하나님은 잊어버린 체, 공자를 신(神)처럼 받들고 이 유교사상 하나로 이조 500년 이후로 지금까지 많은 남녀노소를 괴롭히고 살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기독교를 믿지 않는 양반 집안에서는 아직도 유교사상으로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지 않습니까? 진짜 공자(孔子)가 존중한 사상은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간절히 바라던 제사와, 조상(祖上)숭배와, 효(孝)의 진짜 근본이 무엇이냐? 모든 것의 근본이 되시는 창조의 신(神) 상제(上帝)하나님을 그렇게 섬겨야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피조물인 조상(祖上)만을 섬기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한동안 큰 혼란에 빠져 있던 중국이 평정되고 정리되면서 상제(上帝) 숭배사상은 다시 제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특히 명(明)나라 시대에는 본격적으로 회복하게 되었으나, 그때는 이미 황제(皇帝)나 왕족(王族)이라는 특권층이 그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것을 악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른 쪽 사진은 중국의 황제가 살던 자금성(紫禁城) 한 중간에 상제(上帝)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祭壇)입니다. 하늘 천(天), 제단 단(壇)을 써서 천단(天壇)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천단(天壇)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땠을까요? 우리나라는 더욱 더 상제(上帝)하나님을 잘 섬기던 나라였습니다. 고조선(古朝鮮)의 풍습이 상제(上帝)하나님을 섬기는 풍습이었고, 고구려(高句麗)의 국가 축제인 동맹(東盟)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부여(夫餘)의 영고(迎鼓)라든가 동예(東濊)의 무천(舞天) 등… 우리 민족의 고유한 행사와 사상에는 전부 상제(上帝)하나님을 섬기던 사상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중국인의 종교적 배경으로 보나 역사적 배경으로 보나, 미궁에 빠졌던 갑골문자의 기원이 기독교 성경 창세기에 기록되어있는 인류 공통의 사건과 관련되어서 만들어졌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들이 나타나게 되었고, 연구분석 결과 수많은 갑골문자의 기원이 창세기의 사건에서 비롯되었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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