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제5부
3, 사도들의 예언 17-19
17 :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18 :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9 :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
사랑하는 자들아 : 이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
곧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말한다 (1 절 해석 참조 ).
이미 말한 것같이 이 사랑하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은 자들외에는 사도들의 예언을 이해할 자가 없다.
다만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랑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롬 8 : 9 ).
그들은 마치 사람의 말과 글을 개와 돼지들이 알지 못함과 같다.
성령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
경건치 않는 정욕대로 행하며 기룡하며 당을 짓는 일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이들이 바로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요 ( 4 ), 본서의 3 단체 ( 5-10 ) 와 3 개인 ( 11-16 ) 같은 자들이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입으로 말하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양이 있어 보여도
진실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억하지도 않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도 못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 (1 절 해석 참조 )
사도 : 예수께서 친히 택하여 세우신 자들의 직분이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려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 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신 것이다 (눅 6 : 12-13 ).
누가복음에 나타난 그들의 이름은
베드로 (시몬 ),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 셀롯 (시몬 ), 유다 (야보고의 아들 )
가롯 유다이다 (눅 6 : 14-16 ).
마가는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막 3 : 13-19 ) 고 하였다.
마태는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마 10 : 1-4 ) 고 기록 하였다.
이를 종합해 볼 때 베드로 (게바, 시몬, 요한의 아들 ), 야고보, 요한 (보아너게 ),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나다니엘 ),
미태 (레위 ), 도마 (디두모 ), 야고보 (작은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
다대오 ( 야고보의 아들 또는 형제, 알패오의 아들, 가롯 유다 아닌 유다 ),
시몬 (가나안 사람, 셀롯은 열심당원 ), 가롯 유다로 열 둘 사도이다 .
참고로 다음 사항을 설명 하고자 한다
A, 맛디아 사도에 대한 일이다
그가 사도임을 부인하는 자들은 그 이유를
1, 그는 예수께서 직접 새운 사람이 아니고,
2, 성령 강림 전의 일이며
3, 제비를 뽑았고
4, 사도는 열 둘이니 바울이 가롯 유다 대신에 들어 열 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맛디아가 사도가 됨은 확실하다 그 이유는
1, 마가의 다락방에 120 명이 모여 기도중에 베드로는 구약의 예언
“저희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그 장막에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시 69 : 25 )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시 109 : 8 ) 라고 전제 하였다.
사도가 될 후보 자격을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행 1 : 21-22 )
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무리에게 “나를 따르라” (눅 14 : 25-35) 는 알씀을 항상 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세례 요한 때로부터 승천하신 날까지 항상 같이 다니던 사람이면 이미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들은 자이니
사도로 피선 될 수 있다.
2, 성령 강림 하시기 전의 베드로가 한 말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정을 받는 말이 없지는 않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마 16 : 16-20 ) 하셨다.
베드로의 말이 성령 강림하시기 전이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하심이라고 친히 증명하셨다.
이와 같이 성령 강림 전의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이미 하나님이 알게 하심이 있었다.
이를 보아 마가의 다락방에서 베드로의 제의로 맛디아를 선택한 것이니 사도 되기에 자격이 확실하다.
3, 제비를 뽑아 선택한 것도 믿음에서 한 일이 있으니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 16 : 32 ) 하였다.
옛날 아간이라는 사람이 물건을 탐내어 감춘 것을 이스라엘이 패전할 때 제비를 뽑아 알았고 (수 7 : 14-18 ),
사울을 선택할 때도 제비 뽑아 되었으며 (삼상 10 : 19-24 ),
요나단이 지팡이로 꿀을 찍어 먹었을 때에도 제비를 뽑아 알게 되었다 (삼상 14 : 3-42 ).
이같이 성경 중에는 사람이 제비를 뽑았으나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이 많았다.
4, 사도는 열 둘이어야 한다.
맛디아를 부인하는 자들은 바울로 열 두 수에 계산하지만 실은 유대 사도가 맛디아까지 합하여 열 둘이 되고
이방 사도로 바울과 바나바가 되는 것이다.
만일 성경에 사도라고 표시된 사람들을 살피면 맛디아를 제외하고도 열 셋이니
“두 사도 바나바와 사울” (행 14 : 14 ) 이 있음이다.
이와 같이 바울을 가롯 유다 대신으로 하여 열 두 사도로 계산 하려 함은 잘못된 것이다.
사도행전 기자가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행 1 : 26 ) 고 선언하고 있다.
B, 바나바의 사도 됨에 대한 설이다.
“두 사도가 바나바와 바울” 이라고 하였으니 바나바가 어떻게 사도가 되었을까 ?.
그를 사도라 한다면 확실히 예수께서 직접 세우셨어야 했을것이다.
혹은 성경에는 기록이 없드라도 예수께서 바나바에게 “나를 따르라”고 직접 분부 하심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요한의 세례 때부터 승천하신 날까지 맛디아와 같이 항상 예수를 따르면서 예수께 “나를 따르라” 는 말씀을 듣던
이들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한가지 추측되는 것은 성경 중 어떤 청년에 대한 기록이다.
그가 예수께 나아와 영생을 물었을 때 예수께서 “계명을 지키라, 살인 하지 말라, 간음 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고 하셨다.
그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나 아직도 무었이 부족하나이까” 반문 하였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셨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갔었다.
그가 바나바가 아닌가 한다 (마 19 : 16-29, 막 10 : 17-30, 눅 18 : 18-30 ).
이유는 바나바는 다락방을 제공한 여인의 오빠로 마가 요한의 외삼촌이다 (골 4 : 10 )
예수께서 가끔 그의 누나 집에 출입하실 때 만날 수 있었을 것이므로 방문했던 청년이 바나바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가롯 유다의 공석을 보선할 때 요셉과 맛디아 두 시람을 거명하고 투표하여 맛디아가 당선되었다.
요셉은 부자 청년이었고 자기 재산을 다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그때 사도들이 그의 이름을 바나바라고 불렀다 (행 1 : 23, 4 : 36-37 ).
예수께서 부자 청년에게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눅 18 : 22 ) 하신 일이 계셨다.
요셉(바나바)이 자기 재산을 다 팔아 사도들의 발앞에 둔 것은 예수의 말씀에 순종함이요, 그리고서 예수를 따르는
사도의 직책에 나아갈 수가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예수께서 그 청년 개인에게 “나를 좇으라” 하였으니 그가 좇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바나바가 바울을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소개했고 (행 9 : 26-27 ),
또한 바울을 다소에서 안디옥에 데려왔다 (행 11 : 24-30 ).
바나바는 여기서부터 온 천하의 복음운동에 바울과 함께 사도로 일할 수 있었다 (행 14 : 14 ).
C, 열 둘의 수
구약시대는 열 두 지파였고 신약시대는 열 두 사도였다.
대환난 전에 인맞은 자가 열 두 지파에 각 지파 일만 이천으로 합하여 십 사만 사천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계 7 : 1-8 ).
또한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계 12 : 1 ) 하였다.
보좌에 이십 사 장로들이 있다고 하였으며 (계 4 : 4 ), 거룩한 성에 열 두 기초석과 열 두 문이 있고
성의 장과 광과 고가 일만 이천 수다디온이며 성곽은 일백 사십 사 규빗이라고 하였다 (계 21 : 12-17 ),
생명나무가 열 두 가지 실과를 맺으며 (계 22 : 2 ) 열 두 달마다 실과가 맺힌다고 하였다 (계 22 : 2 ),
하나님의 경륜의 법칙에 열 둘로 작정하심이 매우 많다.
노아 때에도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 6 : 3 ) 고 하셨다.
인생들의 생활에도 열 둘의 수가 적지 않다. 일년이 열 두달이요 하루가 열 두 시간씩 계산되며,
인생 회갑 60 년도 12 년의 다섯 배이다.
D, 사도들의 일생은 예수를 따르는 빛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도들의 시종을 살펴볼 필요가 절실하다
a, 예수에게 오기 전의 그들
1, 거룩한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그때의 유대는 정치적으로는 로마에 속해 있었지만 종교적으로는 대단하였다.
지금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유대교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하여 전국에 비등하고 있었다.
지도층은 제사장, 서기관, 교법사, 선지자들이 무수 하였고 신자는 그 국민 전부 였으며 매년 산대 절기 때에는
남자만 백만 명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경배하였다.
열국의 영웅들도 제사장 앞에 무릎 꿇어 축복을 받았으니 유명한 희랍의 알렉산더 대왕도 그러하였다.
당시 사도들은 이러한 권세와 영광의 종교계에 현혹되기 보다느 오히려 부패와 외식을 간파하였다.
그리하여 차라리 광야의 세례 요한의 제자가 되었고
메시야가 오실 때까지 바다와 농장과 직장에서 조용히 일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종교계의 명예, 지위, 권세, 이권을 배설물 같이 여겨 얻으려고 투쟁하거나 아부 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거룩한 믿음을 지난 그들이었다.
2, 사도들은 일 하던 사람들이었다.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는 갈랄리 바다에서 그물 던지다가,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는 그물을 깁는 현장에서 부르심을 입었다 (마 4 : 18-22 ).
마태는 세관에 앉았다가 (마 9 : 9 ),
나다니엘은 무화가 나무 아래 있을 때에 (요 1 : 48 ) 부르심을 입었다.
사도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은 놀거나 게으른 자들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생동의 사람들이었다.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 : 17 ) 하시어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일하심을 밝히셨다.
또 예수 자신도 일한다고 하셨다.
그가 열 두살 될 때에 예루살렘에서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셨다 (눅 2 : 51 ),
30 세쯤 되실 때 (눅 3 : 23 ) 까지 목수 일을 하셨고 (막 6 : 3 ),
삼여 년의 공생애에 쉬실 틈 없이 일하시다가 생명을 쏟으셨다 (막 10 : 45 ).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는 기도를 하신다 (마 22 : 44, 행 2 : 33, 7 : 55-56,
롱 8 : 34, 엡 1 : 20, 골 3 : 1, 히 1 : 3, 8 : 1, 10 : 12, 12 : 2, 벧전 3 : 22, 계 3 : 21 ).
또한 그는 말세에 재림하사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계시게 되며 (계 17 : 14 ) 영원한 나라에 인류를 옮기므로
하나님의 뜻과 인류의 구원을 완성 하실 것이다.
성령께서도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 : 26 ) 하였다
이와같이 삼위 일체 되시는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일을 하신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일하던 사람들이다.
인류의 시조 아담도 범죄 전에는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 (창 1 : 26-28 ).
그러나 범죄 후에는 에덴 밖에서 종신토록 토지를 갈며 땀을 흘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 (창 3 : 17-23 ).
노아는 방주를 지었으며 (창 6 : 14-16 ),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 그 장인 이드로의 목장에서 양을 치던 중 (출 3 : 1-10 ) 부르심을 입었다.
다윗왕은 어려서부터 목동으로 일을 하였다.
사자와 곰을 찟어 죽이며 양을 먹였다. 그는 불렛셋 장군 골리앗을 죽여 자기 나라를 지키는 일까지 하였다.
하나님의 성호를 드러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윗을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게 하셨다
(삼상 16 : 11, 19, 17 : 34-36, 행 13 : 22 ).
엘리야의 뒤를 이어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엘리사도 농장에서 밭을 가는 일을 하고 있었다 (왕상 19 : 19-21 ).
바울 사도는 고린도에서 장막을 만들며 복음을 전하였다 (행 18 : 3 ).
그는 밀레노에서 에배소교회 장로들을 청하여 고별 강연을 할 때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행 20 : 33-34 ) 라고 자기의 일한 것을 말하였다.
고린도 교회에는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고전 4 : 12 ) 하였고,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살전 2 : 9 ) 고 말하였다.
바울 사도의 복음운동에 동참하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장막을 지었고 (행 18 : 3 ), 루디아는 자주 장사를 하였다 (행 16 : 14 ).
이같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은 일을 하였다.
일하지 않고 노는 것은 죄악이라 할 것이며 또한 죄악을 낳을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글 가운데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딤전 5 : 13 ) 라고 하였다. 일하지 않고 게으른 자들의 상황을 말한 것이다.
디도에게 보낸 글에도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라” (딛 1 : 12 ) 하여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두번째 글에는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살후 3 : 10 ) 고 강력히 경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24 : 48-51 ) 하셨다.
또한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마 25 : 14-30 )
하고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고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25 : 30 ) 하여 일하지 않는 자의 심판을 말씀하심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일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엡 4 : 28 ) 하였고,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살전 4 : 11 ) 하였으며,
또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살후 3 : 11-12 )고
하였다.
또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 : 11 ),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 : 58 ) 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요 6 : 27 ) 하셨고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 : 27 ) 하셨다.
그리고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 6 : 34 )
하여 그날 일을 뒤로 미루지 말고 그날에 하라고 이르셨다.
3, 사도들은 성경을 바르게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 다음 항목을 참조 )
b, 예수를 만났을 때의 사도들
1, 저들은 성경의 참 뜻을 깨닫고 있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매우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때에 유대 나라에 메시야를 가르치며 배우고 기다리는 제사장과 서기관과 교법사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전혀 예수를 알지 못하고 죽은 성경 즉 글자 풀이나 하고 있을 때였다.
메시야를 알지 못하였고 메시야를 기다리던 그들이 메시야를 죽였다.
그러나 사도들은 일견 예수가 성경이 예언한 메시야임을 직관 하였다.
안드레는 “메시야를 만났다” (요 1 : 41 ) 하였고
빌립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 1 : 45 )
하였으며 나다니엘은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 요 1 : 49 ) 라고
예수를 알아 보았다.
이들은 죽은 성경을 가진 자들이 아니요, 실로 산 성경을 지닌 복있는 눈과 귀를 가진 정확한 사람들이었다.
2, 저들은 용단의 사람들이었다.
예수를 메시야로 확실히 알았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의 형제들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그를 따랐으며
마태는 세관의 직장을 버리고 좇았으며 나다니엘은 무화과 농장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
이같이 그들은 값진 보화와 진주를 발견했을 때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산 것 같이 모든 것을 당장 버리고 예수를 소유하였다.
인간은 가치를 비판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
참으로 값진 것을 가질 수 있을 때는 값싼 것을 버리고 값진 것을 가질 것이다.
3, 저들은 불변의 사람 곧 관찰하는 사람, 백절 불굴의 투지와 유종의 미를 거두는 충성된 사람들이었다
예수를 따른 후 많은 시련이 있었다
유대교 안에 있는 바리새교파와 사두개교파들의 멸시와 머리 둘 곳도 없이 산과 광야에서 헤매며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경제적인 혜택이 전혀 없었다.
불학 무식한 몇 무리가 나사렛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를 중심으로 유대 도상에서 왕래할 때 어려운 사련의 연속 이었다.
그러므로 수다한 군중들이 따르다가 다 돌아갔었다.
예수께서 “너희도 가려느냐” (요 6 : 67 ) 라고 열 두 제자 들에게 묻기까지 하셨던 것이다.
삼여 년을 굷주림과 천대와 멸시 가운데서 가롯 유다 외에 사도들은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랐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산 표적이다.
그들이 말세에 예언한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미리 한 말 : 이는 예언인데 모든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요 13 : 19, 14 : 29 ).
하였다. 그러나 믿어서는 안될 예언이 많으니 깊이 주의해야 한다.
예레미아 23 장에 “바알을 의탁한 예언” (렘 23 :13 ) 도 있다.
또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렘 34 : 16 ) 하였다.
그들은 거짓 평안을 말하여 귀를 즐겁게 속이는 것이다.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렘 23 : 21 ) 하였고,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몽사를 얻었다 몽사를 얻었다 함을 내가 들었노라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렘 23 : 25-26 ) 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게 하려 함이 아니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자기를 믿게 하여 유혹하려는 것이며 (렘 23 : 27 ),
“내 말을 도적질 하는 선지자들” (렘 23 : 30 ) 이요,
“혀를 놀려 그가 말씀 하셨다” (렘 23 : 31 ) 하여 속이고,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 (렘 23 : 32) 이고,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확하지 아니하였나니” (렘 23 : 32 ) 라고 하셨다.
저들은 거짓을 예언하고 (렙 5 : 31 ) 거짓을 행한다 (렙 6 : 13 ).
예레미아 선지자는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렘 14 : 13-14 ) 하였다.
그러므로 그 선지자들과 그 예언을 받은 백성과 그 아내와 아들과 딸도 모두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다 (렘 14 : 15-16, 20 : 6 ).
그렇기 때문에 “너희 중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게 혹하지 말며 너희가 꾼 바 꿈도 신청하지 말라” (렘 29 : 8 ). 하셨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도 믿어서는 않될 남녀 선지자들의 예언에 주의를 시키셨다.
“자기 마음에서 나는대로의 예언”(겔 13 : 2 ),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 (겔 13 : 3 )를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다고 하였고 (겔 13 : 4 ),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겔 13 : 6 ),
거짓과 헛됨이 들어날 것이며 (겔 13 : 8-9 ), 거짓 평강을 말하여 유혹할 것이다 (겔 13 : 10, 16 ).
부녀 선지자들도 자기 마음에 나는 대로 예언할 것이요,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고자 방석을 모든 팔뚝에 꿰어 매고
수건을 만들어 큰 자나 작은 자나 머리에 쓰고 두어 웅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거짓말을 곧이 듣는 백성에게 거짓말을 지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린다고 속이며
의인을 거짓말로 근심하게 하며 악인의 손을 굳게하여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삶을 얻지 못하게 한다고 하였다 (겔 13 : 17-22 )
이와같이 구약 성경 중에 하나님이 세우신 참 종들의 예언은 일점 일획이 틀림없이 천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루어질 예언이지만 믿어서는 멸망하는 믿지 못할 예언지들의 예언이 많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참 선지자는 적었고 거짓 선지자들이 더 많았다. 어느 때나 마찬가지이다
어떤 때는 거짓자들의 예언도 맞을 때가 있다, 그러나 믿어서는 안된다.
일찌기 모세를 통하여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 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신 13 : 1-5 ) 고 하셨다.
2, 마지막 때 있을 일 예언
마지막 때 : 성경적인 마지막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부터를 의미한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 1 : 2 ),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 9 : 26 ),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고전 10 : 11 ) 는 말씀과 같다.
그러나 본서에서의 마지막 때는 예수의 초림 때부터 먼 후일 재림의 때를 내다보고 한 말이다.
(1) 불경건한 정욕대로 행함
이것은 이단자들의 생태이다.
본서 4 절에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유 4 ) 하였다.
또 에녹은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유 15 ) 하는 자들이라 하였으며 원망과 불만과 자랑의 말과 이를 위해 아첨하는 자들 (유 16 ) 이라 하였다.
다시 말하면 본서 중에 있는 3 단체 (5-8, 10 ) 와 3 개인 (11-13 ) 의 생태 그것이 바로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는 ” (18 ) 그 일인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까지 십자가에 못박아 성령으로 살지만 (살 5 : 24-25 ),
이단자들은 정욕대로 산다.
정욕은 항상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 세가지로 우리의 마음과 몸을 (벧후 2 : 18 )
여러가지 방법으로 바꾸어 유혹한다.
눈과 귀와 몸의 감각을 통해 마음에 침투하여 유혹한다.
이때 그 속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들은 정욕대로 살게 된다.
(2) 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
베드로는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벧후 3 : 3-4 ) 할 것이라 예언하였다.
옛날 롯의 사위들은 장인 롯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농담으로 여기다가 멸망하였다. ( 창 19 : 14 ).
이와 같이 기롱은 조롱과 농담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말하면서 그 말씀에 진실치 못한 것과,
자기의 소견이나 인간의 지식으로 성경을 어리석다고 하는 것 또는,
성경을 자기마음대로 사사로이 풀이하는 자들과.
말씀을 믿지 않으면서 종의 직분을 가지고 처세의 방법을 삼는 자들이며,
자기 신비로 성경을 두려움 없이 성령의 감동과 묵시로 알게 되었다고 속이는 자들과,
말씀을 듣고 보고 생각하지만 육만 있고 성령이 없어 행함이 없는 니 모든 자들은 기롱한 자들이다
3) 이 사람들
(1) 당을 짓는 자
이는 18 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교회의 지도자등 중에서
“자기의 경건치 않는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 이 이미 믿음이 무너진 자들로서 기롱하는 무리로 전락될 것을 말함이다.
그들은 정욕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같은 종류 끼리 당을 지어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난동과 투쟁을 할 것이다.
저들에게는 하나님과 진리로만 복음운동을 할 독립적인 거룩한 믿음의 힘이 없기에 부득히 인간 세력이라도 모아
당을 짓게 된다. 그들이 만든 당도 교회와 교파와 단체의 이름으로 하며 교회와 단체 안에서 활약한다.
자기 정욕대로의 목적이 어긋날 때는 교회와 교파와 단체들이 중상 모락과 허위 날조로 유혈과 법정 투쟁을 불사한다.
본서에서 고라는 당을 지어 모세의 지위를 탈취하려다가 멸망을 받은 일이 있었고 아비멜렉이 친척끼리 당을 만들어
악을 행하다가 멸망하였다 (삿 9 : ).
당에 대하여 몇가지 참고하려고 한다.
바울을 “나사렛당의 괴수” 라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송사한 일이 있었다 (행 24 : 5, 14 ).
결국 나사렛 예수를 당을 만든 창당자로 보고 예수 승천 후의 바울을 당수로 본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모아 사도가 되게 하시어 땅끝까지 자기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다 (행 1 : 8, 마 28 : 11-20 ).
초대교회도 일백 이십 명이 한자리에 모여 기도 중에 성령을 받고 순교하기까지 일심 일체가 되어 일하였다.
지금까지 주의 종들이 국내와 외국에서 합동하여 복음으로 천하인간을 구원하려고 물심신을 다하여 일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이들은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기를 이기고 성령의 인도와 성경의 말씀을 이루려고 재산과 생명을 바쳐
희생하였다. 이와같은 모임은 인간들의 당과는 내용이 전혀 다르다.
이 모임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 4 : 3-6 ) 라고 하여
모두 하나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모임이다.
정욕을 이루려 서로를 달리하는 인간들의 그런 당이 아니었다.
모든 성경은 화평하라고 말한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 : 9 ) 하셨다.
이 화평은 정욕을 이루려는 혈기로 화평하라는 것이 아니요,
“첫째는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 (약 3 : 17 ) 하는,
먼저 자신의 정과 욕이 십자가에 못박혀 성결한 사람들로서 화평하여 하나가 되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먼저 “청결” (마 5 : 8 ) 을, 뒤에 “화평” (마 5 : 9 ) 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청결이 없는 하나 곧 화평은 불결의 집단으로 하나님도 사람도 바라는 단체가 아니다.
교파와 단체도 일개 집단이다.
선의의 분파도 있지만 악의의 분파도 있다.
선악간의 분립된 교회, 교파, 단체가 청결한 은혜를 체험한 자들로 구성되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교회, 교파, 딘체일 것이다.
마는 그렇지 못할 때에는 이름은 교회이지만 실상은 사탄의 회 곧 당을 만들어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을 행하는
강도의 집단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의의 좋은 교회와 교파와 단체 안에서도 가만히 들어온 자들은 그 단체나 교파와 교회를 당으로 악용한다.
예수께서도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요 2 : 14-16 ) 하셨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마 2 1: 13 ) 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지시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이지만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과 신자를 위한다는 미명아래
성전에서 자기들의 정욕으로 이권을 도모하여 장사하는 집으로 삼았으며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이를 죽이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지적하신 것이었다.
이와 같이 교회와 단체와 교파가 경건치 않은 자기 정욕의 목적을 이루려고 이권을 위한 집단이 되거나
다른 이를 중상 모락하여 명예를 훼손하는 방법 등으로 자기 이익을 꾀한다면 이것이 바로 강도의 굴혈인 것이다.
인간들이 모인 이단의 당이라는 말이다.
그 실례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때는 예장과 기장이 갈린 직후이다.
굴지의 큰 교파 총회장 이목사와 두 박목사와 총회 임원인 수명의 목사들이 내방 하였을 때의 대화이다.
이목사는 “최목사는 우리 교파의 삼대로 알고 있읍니다,
우리 총회와 합동하여 같이 일하는 것이 우리 임원이 방문한 목적입니다,
마음껏 일하도록 총회장과 신학교에 추대하겠읍니다” 하며 일어섰다.
매우 온유 겸손한 목사님 이라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 부족한 저를 찾아 주심 황공 감사 합니다, 마는 한가지 실례스러운 말씀을 물어도 양해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귀 단체에서 저를 이단 또는 죄인으로 선전하여 귀 단체 소속 교회에 부흥회도 막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늘 이 목사님 말씀을 믿는다면 어느 내가 진정한 나인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라고 물었다.
박목사는 “제가 광주에 있을 때 최목사가 와서 일주일 부흥회를 할 때 안 일이지만
정통 중 정통이요 성경 신앙인줄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단체적 입장에서 최목사를 좋다고 할 수 없었음은 유감이지만
교세 때문이었읍니다” 하였고 다른 목사는 시기와 질투였읍니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온 것으로 모든 것이
확증이 되겠읍니다” 라고 말했다.
이목사도 이제부터 같이 일하자고 온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나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오히려 두렵읍니다, 악평을 들을 때는 힘이 더 생겼는데 호평을 하시니 자신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저를 찾아 주셨으니 적은 소견을 말씀하겠읍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과 같이 복음을 전하고 있읍니다,
또 여러분들이 저와 같이 일하고 있다고 진정 믿고 있읍니다, 다만 바르게 하느냐가 문제일 따름입니다” 하자,
“물론 그렇읍니다, 그러나 한 단체 안에서 같이 일하자는 말입니다” 라고 박목사가 말하였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진지하고 정중한 태도로 나를 집중 주시하며 자기들의 요구에 응하는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만일 한 사람이 강에 빠진 자기 어버이나 자녀를 누가 구출해 주었다면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같이 현대 교회와 단체들이 진정 하나님 아버지를 위하고 성경 진리를 올바르게 전달하며 인류 구원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그가 자기 교회와 단체 사람이 아니라도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 보아
사랑과 존경으로 도와야겠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하나님고 진리와 인간 구원에 진실하다고 보면서
자기 교파 사람이 아니라고 하여 중상 모략으로 그 길을 막고 방해하는 일은 악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와 단체를 하나님과 진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이권과 명예를 위하여
장사하는 집과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를 상품으로 여겨 다른 교파 신자라도 억지로 자기 교파에 몰아 넣음은 마치 악한 목동들이 다른 이의
목장 주인과 목동들을 죽이고 소와 양을 빼앗아자기들의 목장에 둠과 같읍니다,
진리의 종으로 인정하면서 그의 길을 막아 방해하는 것은 신자의 생명은 생각지도 않고 상품처럼 알아
빼앗길까 함이니 이것이 바로 발람의 길입니다, 실로 악한 일입니다, 누구를 지명함이 아니라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다른 박목사는 “옳은 말입니다, 그런 뜻에서 들어와 같이 일합시다” 하였다.
나는 “진정 그러시다면 외국의 예를 따를 수 있겠읍니까 ?, 외국에서는 두 단체가 합동될 때는 작은 단체 이름으로
한다고 들었읍니다, 구; 단체도 저의 단체와 교회 이름으로 합동 하시겠읍니까 ?” 라고 반문하였다.
그는 “그 권한 까지는 의논하지 못하고 왔읍니다, 저희 단체 명의로 하십시다” 라고 제의하였다.
나는 “그러시다면 결국 합동함이 아니라 흡스를 달하는 것 밖에 안되는 셍이군요” 하자 모두 웃었다.
박목사는 기다리겠다며 아찌하든 같이 일하자고 하였고 나는 후의를 감사한다는 말로 그들과 작별하였다.
그후 그 단체는 사분 오열로 여러가지 물의를 일으켜 하나님의 영광을 어둡게 하였고 사람들의 빈축을 샀었다
다른 예도 있다.
해방후 신사 불참배 목사들을 중심으로 한 어느 단체의 초기에 그들의 대표인 한목사, 박목사와의 일이다.
한목사는 “얼마동안 아무리 해 보아도 안됩니다”그만 두겠읍니다”.
나는 “됩니다, 전국에서 일어납니다, 제가 돌보겠읍니다, 신학교와 교수들의 사택이 대구에 마련되어 있읍니다”
라고 하자 그들은 “아멘” 하며 일어섰다.
그리고 그들은 총회에 탈퇴 성명을 내겠다는 것이다.
나는 “안됩니다, 정통신앙을 위해 죽음과 옥고를 격은 법통측에서 일제 아래 불법을 행한 그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겠읍니까 ?,
또 탈퇴하면 교회와 재단을 내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법통총회에서는 신사 참배한 자들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환영한다는 성명을 내야합니다”
(이로 인하여 법통총노회라는 이름이 생겼다 ) 라고 강력하게 말하였다.
한목사와 박목사는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세 사람이 약정 정관을 작성 합시다” 하여 정관 작성에 대한 담화에 들어갔다.
이 대화 중에서 한목사는 “신학교건만은 그 권리를 저에게 영구히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요구 하였고,
나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지금 우리들의 성경관과 신앙이 같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사회 결의에 의하여
선출하여 책임을 맡기면 될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그렇게 하여 싸워야 한다고 고집하였고,
나는 “복음투쟁은 혈기와 인간의 방법이 아닌 진리로 싸워야 할 것입니다” 라고 밝혔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같이 일할 수 없으며 성경과 기도로만 복음을 전하겠다는 말로 그들과 작별하였다.
그들의 교파는 후에 법정 투쟁과 성명서 투쟁으로 교계에 물의를 일으켰고 자기들보다 더한 신사 불참배와
성경 신앙을 가진 종들이라도 자기 교파의 종이 아니면 그들을 중상 모략으로 대하였다.
이때부터는 그 교파도 인간들의 소견을 고집하는하나의 당으로서 하나님과 진리와 신앙의 지조를 높인다는 미명 아래
자신들의 고집을 확장 시켰다.
고집은 우상 숭배와 같은 죄이다 (삼상 15 : 23 )
교회 안과 밖에 도적이 있고 또 진실한 종도 있다.
교회 안의 지도자들이 다른 교회 신자들을 빼앗으려고 방문하며 그 교회의 목사를 중상한다.
그러면서 자기 교회 신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다른 이를 욕하고 접촉도 못하게 하며 금전과 물질을 탐하면서
인도하는 자들이라면 그가 바로 도적이다.
또 다른 남의 교회 신자로 하여금 그들 교회에 봉사케 하지 않고 자기만이 참 종이라고 자기에게
봉사하게 하려고 갖은 언행으로 유혹하는 도적이 많다.
이같은 자들의 모임이 당을 짓는 자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교회 안과 밖의 참된 종들도 적기는 하지만 전혀 없지는 않다.
이런 종들은 개인이나 교회 안과 밖에서 당과는 아무 관련된 뜻이 없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일에 몰두하는 그를 따르고 봉사하는 모임이 있다 하여도 그것은 작당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의 모임이다.
이와 같이 현대 교회와 교파 싸움은 진실로 하나님과 인류를 위한 진리의 투쟁인지 아니면
하나님과 인류를 위한다는 이름 아래 자기의 소욕을 위한 투쟁인지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는 이름은 신자의 회이나 실상은 사탄의 회가 되며 (계 2 : 9 ),
아브라함의 자손아 아니라 독사의 자식이며 그들의 모임은 성도의 성전이 아니라 악당의 소굴이 될 것이다.
(2) 육에 속한 자
불신자가 아닌 신자라는 이름을 지니고 하나님의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지만 불경건한 자기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을 말한다.
곧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씻기우지 못하며 불과 성령으로 세례 받지 못한 자이다.
그러므로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인 것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 : 9 ) 하였고,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롬 8 : 10 ),
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 : 11 ) 하였다.
그러나 영이 없는 육에 속한 자들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 2 : 14 ) 라고 하였고,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8 : 6 ).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롬 8 : 8 ).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 : 19-21 ) 라고 허였다.
본서에서 그 실증을 충분히 본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는 했어도 육체의 욕망인 색욕으로 바꾸고 ( 4 ),
출애굽 백성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친히 체험 했으나 가나안 정탐 때 아낙의 자손을 더 두려워 했으며 ( 5 ),
지위를 지키지 아니한 천사들은 처소를 떠났고 ( 6 ),
소돔 백성들은 음욕인 음행에 빠져 멸망했으며 ( 7 ),
가인과 고라와 발람은 모두 하난님의 지시와 인도를 받은 자들이었으나 육체의 소욕으로 망했다 ( 11 ).
여기에 한 가지 주의 할 일은 구원 얻을 신자도 어릴 때는 육에 속한 자 같이 지내는 동안이 있다.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 3 : 1 ) 하였고 또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3 : 3 ) 하였다.
이와 같이 구원 얻을 신자도 육에 속한 자 처럼 살 때가 당분간 있다마는 점점 자라 영에 속한 생활을 하게 된다.
이단이란 어린 신자들이 덜 되었을 때의 연약한 생활을 얼마 동안 행하는 것을 말함이 아니요,
이미 큰 경험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지도자들의 위치에 있은 자들로서 육에 속한 그들을 지적한다.
(3) 성령은 없는 자
성령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 1 : 26 ) 라고 하셨다.
사람에게는 마음과 말과 행위가 있음과 같다.
성부는 뜻하시는 분으로서 사람의 마음과 같고, 성자는 말씀하시며, 성령은 역사 하시는 신으로 사람의 행동과 같다.
사람에게는 마음과 말과 행위가 있어 일인격을 이룬다.
어느 사람의 마음은 그의 말과 행위가 아니요, 그 사람의 말은 그의 마음과 행위가 아니며 그의 행위는
그 사람의 마음과 말이 아니다.
이같이 마음, 말, 행위가 각각 다르지만 하나의 인격을 이루는 것과 같이 성부, 성자, 성령이 다르지만
하나의 일체를 이루신다.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은 항상 같이 일하시나 시간과 일을 분담 하신다.
시간적으로 성부는 구약시대,
성자는 신약 33 년,
성령은 성자 승천후 오순절 때부터 재림하실 때까지이다.
성부는 뜻하시고 약속하시며, 성자는 말씀으로 오셔서 속죄와 부활과 장차 재림으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성령은 마지막에 오시어 감동과 감화와 충만으로 완전케 하신다.
천지를 창조 하실 때에도 하나님이 (뜻) 빛이 있으라 하시니 (말씀) 빛이 있었다 (힘).
어느 때든지 삼위께서 순서대로 나누어 일하신다.
개인 구원도 성부의 예정과 성자의 속죄와 성령의 역사로 완성하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삼위일체시요 시간과 일을 나누어 하신다.
성자 승천 후는 성령의 역사 시대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없는 자는 신자가 아니다.
앞에서 말함과 같이 성령의 역사는 감동, 감화, 충만으로 구분한다.
감동은 구원을 얻을 자와 때로는 구원을 얻지 못할 자들에게도 함께 있을 수 있다.
구원 얻을 신자가 성령으로 예수를 주라 함은 물론이지만 (고전 12 : 3 ) 사울왕, 발람, 가롯 유다도 일시적 감동을 받았고
심지어 발람의 나귀는 감동으로 사람의 방언과 천사를 보며 발람을 책망하기 까지 하였다.
이들은 감동을 받았다고 해서 중생의 생명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감화는 중생 얻은 지들을 장성하게 인도 하시는 성령의 역사이다.
충만한 감동에서 감화로 거룩해진 성도에게 항상 같이 계심을 말한다.
곧 성화 되어 주가 계시기에 합당한 성전이 된 성도에게는 성령이 항상 내주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삼년동안 예수를 따를 때 성령으로 권능을 행하고 사귀를 내어 쫓았다.
그러나 예수 승천 직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 1 : 4-5 ) 하시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 : 8 ) 고 하셨다.
여기서 사도들이 성령의 감동과 감화 시대인 오순절 때부터의 시대가 똑똑히 보인다
사도들은 열흘 기도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었다.
사도들이 예수를 따르기 시작한 때부터 이미 놀라운 각오와 용단으로 모든 것을 버렸고 따르는 삼 년 동안도
그 어려운에 굴하지 않고 기사와 이적까지 행하며 능력있게 예수를 모신 그들이었으나
이들은 성령 감화 시대에 속한다.
그러기에 그들은 가끔 실수도 했으니 높은 자리 다툼과 (막 10 : 34-45 ), 겟세마네 홛ㅎ 사건이며 (마 26 : 69-75 ),
다시 디베랴 바다의 어부생활로 되돌아간 일들이다 (요 21 : 3 ).
그러나 그들이 성령을 충만히 받은 후에는 그런 실수가 없이 죽기까지 기쁨으로 사명을 완수 하였다.
이같이 성령의 역사에 감동, 감화, 충만이 있어서 얼핏 보면 이 세 가지가 다 같아 보이지만 엄격히 구분된다.
물론 감동 때에도 순간적인 충만이 있을 수 있다.
“성령이 없는 자” 라는 말은 감화와 충만이 없다는 말이요 감동도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감화와 충만은 중생된 자에게 한하고,
감동은 중생한 자에게는 물론 중생하지 못한 자에게도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있다.
중생의 생명이 없는 자를 성령이 없는 자라고 말한다.
중생의 생명이 없는 자에게는 성령이 계실 곳이 없다.
곧 성령의 감동을 받아 보존할 생명이 없기 때문에 감동 때에만 성령의 힘으로 작용될 뿐이다.
하나님은 무소 부재의 존재자이면서 계시지 않는 오묘함을 지니셨다.
다만 하나님의 역사로 죄를 회개하고 속죄의 의를 믿게 되는 중생의 생명을 받은 자는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곧 성령이 계신 자이다.
왜냐하면 중생된 생명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생명으로서 성령을 이해하고 또 같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생명이며
성령도 그와 같이 계시기 때문이다.
바울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3 : 16-17 ) 고 말했다.
그 속에 성령이 없는 자는 중생의 생명이 없다는 말이다.
이상과 같이 사도들이 마지막때 하나님의 교회 안에 경건치 아니하며 자기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고 당을 지으며
육에 속하고 성령이 없는 잘못된 지도자들 곧 가만히 들어온 이단이 많을 것이니 이것을 기억하라고 예언한 말씀이다
참으로 주의 할 일이다.
사도들의 예언 : 신약시대에 사도들이 마지막때 이단에 대하여 말한 예언을 살펴보고 기억하자
베드로 사도는 벧후 2 장에 다음과 같은 예언을 하였다.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이 있어 주를 부인케 하는 이단을 끌어들일 것이며 (1),
호색 곧 육체의 더러운 정욕을 위하여 음심이 가득한 눈으로 범죄를 쉬지 않고 연락을 기쁘게 여겨 음란한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함으로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더 (2, 13, 14, 18),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3),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며 (2 : 14 ),
저들은 주관자를 멸시하고 담대하며 고집하고 떨지 않고 영광자와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며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고 (13),
허다한 자랑의 말을 토한다. (18),
그들은 잡혀 죽기 위한 이성없는 짐승 같아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는 개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 돼지이고 (12, 22),
저주의 자식이며 (14),
물없는 샘이고(17),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라 하였다 (17).
또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벧후 3 : 3-4 ) 고 할 것이라고 하였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영원한 나라를 부인하는 자들의 말이다.
바울사도는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딤전 4 : 1-3 ),
”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딤전 4 : 5 ) 하였다.
이 말씀은 말세 교회에 마혹하는 영과 귀신을 받은 자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며 이적과 능력과 표적을 보이며 유혹할
억령을 받은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들이 많이 있을 것을 예언함이다.
그런 때에 성도는 말씀과 기도로거룩하여지는 은혜에 굳게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살전 2 : 1-4 ),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 2 : 6-12 ) 하였다.
이 말씀은 기사와 이적을 가장 많이 행한 바울 사도가 말한 것이다.
말세교회는 불법의 아들이 주장하여 여러가지의 신비 곧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속임수까지 겸하여 성경 중심이 아니라
그러한 재주로 미혹할 것이라 하였다.
이런 불의한 자들을 참 지도자로 알고 그 재주를 믿어 멸망할 것이다 (살후 2 : 1-12 ).
성도는 하나님의 택하심과 성령의 거룩케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하셨으니 (살후 2 : 13 )
이 진리에 굳게 서라고 하셨다 (살후 2 : 14-15 ).
또한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딤후 3 : 1-7 ),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 (딤후 3 : 8 ),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딤후 4 : 3-4 ). 하였다.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후 11 : 13-15 ) 고 하였다.
빌립보 교회에는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빌 3 : 2 ),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 3 : 18-19 ) 하였으며,
골로세 교회에는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골 2 : 18-19 ) 하였다.
예수께서도 말세에 있을 미혹에 대하여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마 24 : 4-5 ) 말씀 하셨고,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 24 : 11-12 ) 하셨다.
그리고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마 24 : 23-28 ) 하셨다.
또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 : 22-23 ) 하셨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고 잘못된 신비로 인한 모든 종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말세 교회에 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요 16 : 1-2 ) 하셨다.
진실로 말세 교회는 불법적인 자들이 교회의 주권을 가지고 진실한 성도와 종들을 쫓아내고 죽이면서
자신들이 하나님 교회에 충성한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사도 요한은 말세에 무신론 종교와 유신론 종교계의 타락에 대하여 예언하였다.
먼저 짐승의 나라 (무신론 국가 ) 들의 종교적 상황을 말하였다.
곧 바다 모래 위에 선 용과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땅에서 나온 짐승으로 된 사탄의 삼위일체를 보이셨다.
용은 분노하여 돌아가서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고 ( 계 12:, 13: ),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계 13 : 1-8 )
또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 (계 13 : 11-17 ) 하였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같이 용, 바다 짐승, 땅의 짐승이 우상 종교를 만들어 말세의 모든 자들로 하나님을 부인하게 하고
자기를 믿고 경배하며 자기와 자기 우상에게 절하게 할 것이다.
성도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에 있다고 하였다” (계 13 : 10 ). 이는 무신론자들의 종교이다.
저들이 본격적으로 마흔 두달 동안 일할 것이다.
요한은 다시 유신론 자들이 하나님의 교회가 타락된 일에 대하여는 한마디로 “음녀” 라고 표현하였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있어 하나님을 믿는 자와 교회와 나라가 타락될 때는 음행하는 여인으로 말해 왔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계 7 : 1-6 ),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계 18 : 7-8 ) 고 하였다.
그가 사치했던 물품은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계 18 : 12-13 ) 고 하였다.
이상의 29 종류의 상품으로 온 세계를 유혹하며 자고함과 사치로 타락한 음녀는 마침내 짐승 나라의 불에 멸망할 것이다. (계 17 : 16-18 ).
여기서 특히 주의할 것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하였다는 말씀이다.
교계가 타락될 때는 언제나 성도들을 핍박하여 죽였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그러했고 예수께서도 예루살렘 교회 종교가들에게 죽임을 당하여 피를 흘리셨다.
타락된 말세교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일 4 : 1-3 ) 하였다.
또 “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요일 4 : 6 ) 하였다.
이 말씀은 성령의 영만 계신 것이 아니라 다른 영도 있어 성령을 받은 자들이라야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이루신 예수를
시인 한다는 뜻이다.
성경을 믿는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심을 부인하고 성경을 그대로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라 세상에 속한 자이니 이것으로 정통과 이단을 분별하라는 말씀이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요이 7 ) 라고 함과 같다.
만일 이단자 일때는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요이 10 ) 고
알려 주고 있다. 요한 사도 당시에 그러한 잘못된 자들에 대하여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쫓는도다” (요삼 9-10 ) 하여 그들의 행위를 나타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인 세상 끝에 대한 예수의 말씀 중에서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 : 37-39 )
하였고 또한 악한 종에 대하여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24 : 48-51 ) 하였다.
이는 말세 교회의 신자와 종이라는 교역자가 성령이 없이 터락된 상태를 예언하신 말씀이다.
우리는 이같은 사도들의 예언을 기억하여 유혹하는 자와 유혹을 받는 자가 되지 말고 유혹하는 이단과 힘써 싸워야 힐 것이며
유혹 당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겨 불에서 끌어 내야 할 것이다.
[주] “육”에 속한 자며 “성령” 은 없는자,
사람에게는 몸(소마)과, 혼 (푸시게)과, 영 (프뉴마) 이 있다 (살전 5 : 23 ).
몸은 인간의 육체적 구조물이며 체격이다.
혼은 헬라인 들에게 있어서 육체적 생명이었으며 살아서 호흡하는 생물 (사람, 동물, 식물) 에게는 다 있다고 하였다.
즉 푸시게는 육체적 생명의 원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은 홀로 사람에게만 속하며, 생각하게 하며,
신과 동질이 되도록, 또 신에게 말을 할 수 있고 말을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 한다 ( 19 절 해설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