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4월 18, 2024
Happytell search engine

하나님의 최대은사 (4부)

하나님의 최대은사 4부
(4) 물질 관계의 여하를 보아 안다

지위나 명예나 물질은 가지는 사람에 따라 귀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실로 그 자체들은 선도 악도 아니라 할 수 있지만 오히려 선한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 지어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딤전 4 : 4) 하였다.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마치시고 ” 하나님이 그 지어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 : 31) 하였다.
우리가 썩을 물질 또는 배설물 같은 물질 이라 하는 것은
그 물질을 잘못 가지고 잘못 쓰는 사람들로 인하여 물질들이 애매하게 듣는 말이다.

바울은 만물들의 탄식을 들었으니
”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 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은 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 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 8 : 19-22 ) 라고 하였다.

하박국 선지자는 불의 하게 지은 집의 담돌과 들보가 부르짖고 응답한다 (합 2 : 11) 하였다.
이같이 물질은 가지는 자의 여하에 따라 선도 되고 악도 된다.
사람이 재물을 악하게 벌어 악하게 쓴 후 악한 교만을 가지면 이는 죄로 일관 함이라 (약 5 : 1-6 ).
이 재물을 하나님 뜻 안에서 얻어 하나님의 뜻대로 쓸 때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재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된다(빌 4 : 18) .

주의 종 된 바울도 크게 기뻐하여 (빌 2 : 17-17) 복음운동에 동참자가 된다 (빌 1 : 7, 4 : 15) 고 하였다.
사도 요한은 성도들의 물질 봉사보다 더 기쁨이 없다 하여 이를 진리를 행하는 것이라 하였다.
곧 ”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게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 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 하면 가 하리로다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이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 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삼 3-8 ) 라고 하여
물질봉사가 진리를 행하는 것이며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 하는 것이라 하였다.

예수께서 복음을 전파 하실 때 역시 그러하였으니
”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 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새 열 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좇아내심과 병 고치심을 받은 어떤 여자를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 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눅 8 : 1-3) 하여 그때 당시에 몇 여성들의 물질봉사로 예수그리스도를 섬겨 성업을 이루는데 동참 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빌립과 가롯 유다는 전대를 맡은 제자들이기도 했다 (요 6 : 5-7, 12 : 4-6, 13 : 29).
이와 같이 물질은 가지는 사람에 따라 선 하기도 하고 악 하기도 하는 것이다.

1,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은 모두 물질에 청렴 하였다.

곧 하나님과 함께 한 자들은 다 그러 하였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고 있을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 하였다
” 아브라함이 애굽 에서 나올 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라함에게 육축과 은 금이 풍부 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라함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 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 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싸우고 또 가나안사람과 브리스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너나 나나 네 목자나 내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하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 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 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 하면 나는 좌 하리라” (창 13 : 1-9)
하여 싸우지 않고 롯에게 먼저 택하게 한 후 자기는 뒤에 남은 것을 가졌었다.

이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 13 : 14-15) 하여
물질에 청렴한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직접 축복 하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돔 왕이 생명을 걸고 자기를 구해준 아브라함에게 전리품을 다 가지라 하였을 때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서 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부자 되게)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 들메 라도 네가 취하지 아니 하리라” (창 14 : 22-23) 하였었다.

또한 그는 막벨라 굴을 사서 매장지를 삼으려 할 때에도
햇 족속 대표자 에브론이 전혀 값없이 드리겠다고 거듭 말하였지만 준가 (제일 높은 값) 인 4백 세겔을 달아 주고 샀던 것이다.
아브람은 이같이 청렴하면서도 또 물질로 사랑의 생활을 하였으니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 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 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퀘활 케 하신 후에 지나 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 한지라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창 18 : 1-8) 하였다.
이 간단한 기록에 달려가가 두 번, 급히 가 두 번, 속히가 한번 모두 다섯 번이다.
물건은 물, 고운 가루로 만든 떡, 좋은 송아지, 뻐터, 우유, 제일 상품으로 다섯 가지이다.

그리고 태도는 영접, 몸을 땅에 굽힘, 물로 발 씻음, 자기가 음식을 진설, 모셔옴 역시 다섯 가지로 나타났다.
아브라함의 사랑의 생활이다. 제일 좋은 물건으로 접대 하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접대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도 있느니라” (히 13 : 1-2)
하여 성도 들이 가진 물질로 사랑과 접대를 하라 권장 하였다.

엘리야 선지는 여덟 가지의 큰 권능을 행하며 죽지 않고 승천까지 한 위대한 참 종이었다.
당시 잘 못된 선지자들 850명이 아합 왕과 그 왕후 이세벨과 친교로 궁중 출입의 영광과 권세를 누릴 때
엘리야는 그들을 죄악시 하여 단벌옷 (왕하 2 : 12-13 )에 식생활도 어려워 때로는 시냇물을 마시고
까마귀가 아침 저녁으로 가져다 준 떡과 거기서 살았고 (왕상 17:1-7),
때로는 사르밧의 가난한 과부의 집에서 접대를 받았으며 (왕상 17 : 8-9),
또는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할 때에는 천사의 전한 떡과 물로 살았다 (왕상 19 : 1-8).
자기의 여덟 가지 권능을 가지고 국가와 교인들의 돈을 모으는 일을 하지 않았다.
성령의 권능 곧 하나님의 권능을 돈에 팔거나 돈을 버는데 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물질에 이같이 청렴 하였다.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 성령을 충만히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첫째 사도였다.
그는 초대교회 성도들 수천 명이 자기 재산을 팔아 사도에게 바쳤으나 (행 2 : 41-47, 4 : 32-37)
성전 미문에 들어 갈 때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행 3:6) 하였다.
수천 명이 드린 은과 금을 베드로는 자기 것으로 하지 않고 일곱 집사를 선택하여 그들에게 구제하는 일에 쓰게 하였고
자기는 “우리는 기도 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힘쓰리라” (행 6 : 4, 1-6) 하여 물질에 손을 대지 않았다.

바울 사도는 최후 로마 옥중에서 동지에게 보내는 편지 안에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워 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사모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
나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 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 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게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딤후 4 : 6-13) 는 내용이다.

인간적으로만 볼 때는 슬픔의 극이다.
그 위대한 학자, 그 위대한 사도 바울이 백발이 되기까지 무한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복음을 천하에 선포하며
성령의 권능으로기사와 이적을 가장 많이 하던 그 바울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로마 옥중의 죄수가 되었다.
교회와 신자들의 배신을 당하여 동지들도 몇 사람 없다.
그때의 바울에겐 고작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 한 벌이 있을 뿐 이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세례 요한은 제 8 번 째 속하는 제사장이다.
그가 제사장으로 있었다면 그 의식주가 그 나라 최고 였을 것이다. 의복은 제사장의 옷, 곧 보석이 14개나 되는 의복이며
음식은 전 국민의 십일조로 되어 있고 거주는 두로와 히람의 화강석에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지은 사택이 있다.
그러나 자기의 사명에 충실 하려 하여 제사장의 의복을 벗어 버리고 낙타 털옷과 가죽 띠로 바꾸며,
십일조를 버리고 메뚜기와 석청으로, 성전과 사택을 떠나 광야로 옮겼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도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마 8 : 20) 하시기까지
물질에 있어 청빈 하셨으며 마지막 십자가에 못 박히신 때는 몸에 입으셨던 한 벌의 옷까지 빼앗기셨으니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 19 : 22-24) 고 기록 하였다.

그야말로 적빈 그대로였다.
이와 같이 물질은 가지는 사람에 따라 선도 악도 되지만 대게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만 중심 하여
물질엔 거의 청빈이었으며 물질로 봉사한 성도들은 물질과 지위와 명예를 주의 뜻 안에서 얻게 되면
주의 뜻을 위하여 사랑의 봉사에 제물을 드렸다.
참 종은 그런 이권을 위하여 교단과 교회와 신자들을 괴롭히는 일은 아예 없었다. 명심할 일이다.

2, 악령 및 잘못된 체험자들은 오직 물질 착취 곧 명리, 공명, 등 이권 쟁탈에 전념한다.

먼저 순 잘못된 영의 체험 계통에 속한 성경의 말씀을 상고함이 좋겠다.
옛날 유대 나라 남 북조에 하나님의 선지자들 가운데 하나님이 보내지 아니한 선지자들이 매우 많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이 아닌 다른 계통의 거짓 선지자 들이었다.
그러나 국민은 그들을 더 믿어 참 선지자를 죽이는 과오를 범하였다.
그러한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을 잠간 살펴보자.예레미아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예레미아서 23장에 기록된 말씀 중에
“여호와께서 말씀 하시되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특 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들의 악을 발견 하였노라” (11) 하사
[내 집] 곧 성전과 이성문제로 (14) 악을 행하여 더렵 혔다는 말씀이다.
또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 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 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팍 한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여 (16-17) 잘못된 묵시를 말하여 돈을 위하여 악한 자들에게도 그 마음을 사기 위하여
평안 하리라 재앙이 임하지 아니하리라는 말로 거짓 평강을 권 한다는 말씀이다.

이런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이 아니니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 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 하였어도 예언 하였은즉” (21)
하여 참 선지자들 보다 더 열심히 있는양 줄곧 쉬지 않고 예언 하며 돌아다니면서 돈을 갈취 한다는 말씀이다.
그들은 거짓 예언과 꿈 이야기와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 한다 (25-26) 하여
간교한 방법으로 내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인 신자들을 미혹 한다 (32 )고 하셨다.
또한 그들은 말씀을 도적질 하는 선지자라 (30) 하셨는데 이는 참 종들이 증거 하는 말씀을 도적질 하여
자기가 깨달은 진리라 하면서 악용 한다는 것이다.

이상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지 않은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니며
잘못된 체험과 거짓 수단으로 돈을 위하여 열심히 돌아다니게 됨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에스겔 선지자는 에스겔서 13장에 거짓 선지자들의 물질주의의 상황을 명시 하였다
곧 ”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되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에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 찐저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1-4) 하여
거짓 선지자들은 마땅히 할 일을 하지 않고 썩은 먹이 냄새를 따라 교활 하게 다닌다는 말씀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거짓 여선자, 저들에 대한 말씀은 다음과 같다.
“너희가 두어 웅큼 보리와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서 욕되게 하여 거 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서 죽지 아니 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 할 영혼을 살리는 도다” (19-) 하여
하나님의 진리 곧 묵시의 진리를 전한다 하면서 영혼을 사냥물(20-21)로 삼기 위하여
잘 못된 묵시와 꿈과 거짓으로 예언 하며 돌아다닌다는 말씀이다.

미가 선지자도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를 말하였다.
곧 ”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 에게는 전쟁을 준비 하는 도다” (미 3 : 5) 하여
“이에 물고 입에 채워 준다”는 말은 돈 곧 물질을 의미 한다.
물질을 도울 때는 평강을 외쳐 축복하지만 물질을 못 주게 되면 벌써 얼굴이 달라 지며 싸울 준비를 한다 함이다.
이같이 구약 때 이미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으나 말세 교회에는 더욱 많을 것이다.

신약 때에도 역시 잘못된 체험 및 잘못된 선지들은 여전히 물질주의에 그 생사를 다 한다.
먼저 예수께서 시험하던 마귀는 “돌들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 (마 4 : 3) 하여 물질로 구세주가 되라 하였음과 같이
마귀에 속한 거짓 선지자들은 황금 만능주의자 들이 된다.
예수 당시의 종교 지도자 들은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으며 (마 21 : 13 )
장사하는 집을 (요 2 : 16) 만들었다가 예수의 책망을 받기 까지 하였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성전이 썩어 있었던 것이다.
예수의 부활 후에도 무덤을 지키던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서
예수 시체를 도적질 하여 갔다 왔다고 거짓말을 시킨자 들이 당시의 교회의 최고 지도자 들이었다.
교파와 교회와 교회 기관 들이 강도의 굴혈과 장사하는 집이 되기 쉬운 것은 항상 같은 것이다.
강도들의 싸움, 장사꾼들의 싸움은 소란 하고 잔악하다.

바울 사도는 이런 자들을 “개와 행악하는 자들과 손 할례당” (빌 3 : 2) 이라 하였다.
저들은 십자가를 전하는 종이라 하지만 실상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 (빌 4 : 18) 하였으며
또한 저희는 배로 하나님을 삼는 자들이라 (빌 3 : 19) 하였다. 그리고 말세에는 돈을 사랑 할 것 (딤 3 : 2) 이라 하였다.

베드로 사도는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물질주의로 살게 될 것을 말하였으니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 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 하느니라” (벧후 2 :3 ) 하여 거짓 선지자 곧 거짓 종들은 탐심을 이루려 지은 말을 가지고
신자들로 부터 이익을 얻는데 이용한다는 말이다.
유다 선생은 이를 위하여 아첨 하는 자라 (유16) 하였다.
이같이 거짓 자들은 물질 제일주의로 갖가지의 교활하고 악랄한 방법을 총동원 하여
하나님의 종이라는 미명 아래 숨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하여 야심을 달성 하려 한다.

이에 대하여 바울의 신실한 체험담이 있다.
곧 바울의 동지였던 갈라디아 교회 신자들을 거짓 선지자들이 이간 붙여 바울을 배반하고
그 거짓 선지자들을 참 종으로 알고 따르게 함을 본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형제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 하였느니라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 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 하노니 너희가 할 수 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 (갈 4 : 12-17) 하였다.

갈라디아 교회 신자들의 바울에 대한 봉사를 거짓 선지자들에게 하게 하려 하여 열심을 내어 바울을 중상모략 하여
이간을 붙였던 일을 바울이 언급 한 것이었다. 말세 교회에 많이 있고 또 있을 일이다.
그러나 놀라운 또 하나의 일은 하나님의 역사로 일하던 사람들이 물질에 타락된 일도 없지 않은 점이다.
신약성서에도 많이 인용되고 있는 발람 선지자 같은 자 들이다.
발람은 하나님과 대화도 하였고 천사도 만난 자이었다. 그는 예수 탄생 하실 때 별이 나타날 것을 예언 한 자이다 (민 22:, 24:7).
그러한 그가 불의에 눈이 어두워 망하였다 (민 31: 8). 특히 그가 물질에 끌리어 가면서도 하나님의 종으로 끝까지
가장한 간교한 일은 참으로 물질주의 에 타락한 자들의 표본이 되고 남을 것이다.
곧 그는 하나님의 일을 가로 막으려는 발락 왕의 사자들이 예물을 가지고 왔을때 그들을 영접하여 자기 집에 유숙케 하고
하나님의종의 자세로 하나님께 물어 본 것이 그 첫 번째 간교함 이었다. 이미 악 인줄 아는 일을 묻는다는 것은 벌써 범죄이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하사 발람에게 ” 너와 함께 한 이 사람들은 누구냐” (민 22 : 9)라고 문책 하였을 때
발람은 하나님께서 모르셔서 질문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면서도 구구한 설명을 하였다.
이 점 이 그 둘째의 가증 함이다.
그 때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자들이 두 번째 왔을 때
또 다시 집에 머물게 하고 하나님께 물었다 (민 22 : 19).
이미 첫 번 때 책망 과 가지 말라 하셨거늘 이처럼 다시 묻는 것은 기어이 가고픈 심사이다.
물질의 애착이 있는 자들은 이처럼 끊기 어려운 가증함이 있다. 이것이 그의 셋째 가련함이다.
또한 그 는 물질에 눈이 어두워 불 칼을 든 천사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나귀를 책하다가
도리어 나귀에게 책망을 받았으니 (민 22 : 21-34) 이것은 발락의 넷째 타락의 모습이었다.

그는 천사를 보게 될 때 천사가 엄함 말로 너를 막으려고 왔다 (32)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뜻을 잘 순종 하는 체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 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34) 하여
기어코 잘못 된 길 가는 것을 버러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다섯째 간교 무쌍한 태도였다.

그는 마침내 목적지에 이르러 제단 위에서는 하나님의 주신 말씀 만을 증거 하였기 때문에 초청한 발락 왕이 노하여
손벽을 치며 발람을 책하였다 (민 24 : 10-11).
그러나 그는 제단이 아닌 사석에서 음행과 우상의 제물로 이스라엘 군대를 망하게 하는 비밀을 알려 주어
하나님의 뜻이 좌절되게 이스라엘 군들이 실패 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는 공석과 사석이 다른 생활이며 자기 개인의 이득을 위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
곧 교회와 신자를 해롭게 한 그의 여섯째 의 큰 죄악 이었다.

언제나 거짓자들은 강단에서 외치는 말은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체 하지만
그들의 사생활에서 자기들의 이권을 위하며 교회와 신자들의 흥망은 안중에 없이 담대히 행한다.
그 발람의 마지막은 그처럼 사모하던 지위와 물질은 써 보지도 못한 채 칼에 죽임을 달하여 망하였다(민 31: 8).
이것이 그의 마지막 일곱째의 비극 곧 심판이었다.

이를 베드로 사도는 말세 교회에 있을 거짓 종들에 대하여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달하여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 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 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 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 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 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 하였느니라” (벧후 2:13-16) 하였다.

유다서는 “발람을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음행하게 하였느니라” (계 2 : 14) 라고 여러 종들이 경고 하였다.
실로 발람과 같은 종이 될까 두려움으로 끝까지 주의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롯의 아내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천사를 직접 만나 식사를 접대 하였고 또 직접 말을 들었으며 심지어 천사들이 그의 손을 잡아 인도 하여
소돔성 밖에까지 이끌어 주었다.
그러나 뒤를 돌아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 (창 19 : 1-3, 16 : 26). 참으로 애석하고 두려운 일이다.
예수께서도 말세의 말씀 중에 “롯의 처를 생각하라” (눅 17 : 32) 하여 물질주의에 뒤 돌아보지 말 것을 부탁 하셨다.

하나님의 천사와 그 지시를 얻은 (창 19 : 16), 그리고 그처럼 분명한 산 체험,
그 현장에서 까지 뒤를 돌아다 보았으니 한심하다 생각이 들것이다.
그러나 천사 보다 더 크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있는 신약시대 신자들이
장차 천지가 소돔성과 같이 불 탈 것을 알면서도 물질을 뒤돌아보는 신자가 있다면
그는 롯의 아내를 비웃거나 한심한 여인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울 왕 역시 이런 유의 한 사람이다.
그 가 왕이 되기 준수한 소년이었고 (삼상 9 : 2) 왕이 될 것을 사무엘 선지자에게 들었을 때 겸손 (삼상 9:20-21) 하여
왕 됨을 피하려고 숨기까지 하던 (삼상 10 : 21-24),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었던 사람이었으며
심지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도 하였다 (삼상 10:8=9-13).
하나님께서 그 인품도 인정 하셨고 그의 예언은 하나님의 참 종들과 함께 은사의 예언이었다.
그 사울 왕이 물질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 하다가 버림을 받았다.
이 일을 성경은 사무엘상 15장에 다음과 같이 말 하였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 왕에게 미리 말씀 하시기를 아말렉 전쟁 때 전리품을 진멸 하라 하셨다.
그러나 사울왕은 가치 없고 낮은 것은 멸하고 아각과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겼다 (8-9).
하나님의 지시로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에게 이르렀을 때 그는 여호와의 명령을 행 하였다(13) 고 말 하였다.
사무엘이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려오는 소의 소리는 어찜 이니이까?”(14) 물었을 때
그는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제일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 하였나이다” (15) 하였다.

그때 사무엘은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19) 하여 엄책 할 때 사울 왕 자기는 “진멸 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 하려고 양과 소를 취 하였나이다.” (20-22) 라고 자기는 순종 하였으나
백성이 그리 하였다고 책임을 전가 하였다.
죄 위에 죄를 더한 것이다. 이때에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더 좋아하심 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 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 하는 것은 사슬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 하게 하셨 나이다”
(22-23) 라고 선언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사울이 물질을 사랑 하다가 하나님의 말씀 보다 재물을 사랑 하는 죄에 빠졌다.
두려운 것은 그가
ㄱ,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23)
ㄴ, 물질 탈취에만 급하였으며 (19)
ㄷ, 순종 하였다 거짓말을 하였고,
ㄹ, 자기는 하지 않고 백성들이 하였다고 책임을 전가 하였으며,
ㅁ, 하나님께 제사하려 하였다 하여 하나님을 위한다는 미명을 악용하였고 (15,21)
ㅂ, 죄가 확실히 드러날 때에야 사실을 고백 하였으나 (24-25)
ㅅ, 이미 바린바 되어 망 하였다 (26-35).
이상과 같이 물질을 사랑하는 그 한 가지가죄에 좌를 더하여 멸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신약 시대 역시 성령 곧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자들이 물질 사랑으로 심판을 받는 일이 없지 않다.
예수의 제자 가롯 유다는 3년간 직접 듣고 보며 가르침을 받았다.
또는 열 두 제자들이 전도 파송을 받을 때 사귀를 내어 쫒으며 병자를 고치는 능력도 받은 바 있었다.
그리고 3 년간 줄곧 전대를 맡아 재무 사도로 일을 보아 왔다.
그러나 그는 돈을 탐하여 스승 예수를 팔았던 것이다. 그는 불행하게 날 때부터 도적으로 태어났다.
그리하여 돈 궤를 맡아 있을 때에도 거기 넣은 것을 훔쳐 갔었다 (요 12 : 4-6).

인간에게 날 때부터 타고난 버릇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으로는 고치기 어렵다.
특히 도벽, 호색, 탐욕, 등이 더 그러하다고 한다. 그들에게 사단이 틈을 엿보아 들어 가기도 한다.
가롯 유다가 그 한 예이니 예수께서 떡 한 조각을 찍으셔서 가롯 유다의 아들 시몬에게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아 갔다고 하였다 (요 13 : 26-27)

누가는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롯 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이에 유다가 대 제사장 들과 군관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책을 의논 하매 저희가 기뻐하며 돈을 주기로 언약 하는지라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눅 22 : 3-6) 하여
돈을 탐하는 도적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 은 30 에 예수를 팔게 하였다.

옛날 사울 왕도 물질에 타락하여 버린바 되었을 때에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삼 상 16 : 14, 15-23, 18 : 10) 하였다.

초대 교회 때에도 성령의 감동을 받기는 하여 물질을 드리려 하였으나 그 감동을 소멸하고 그 반을 숨기고 속여 드리던
아나니아와 그 아내 삽비라가 죽었던 일도 있다.
그때에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드냐 어찌하여 이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로다” (행 5 : 3-4) 라고 책망 할 때에 남편 아나니아가 죽고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 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꽤 하여 주의 영을 시험 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돌아오는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매어 나가리라” (행 5 : 7-9) 라고 책망할 그 아내 삽비라도 죽었다

현대 교회의 신자들 중에는 감동을 소멸하여 처음 감동대로의 봉사와 충성을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다만 성령을 속이지 말 것이요, 자기의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봉사 하면 된다.

이상에서 말한 발람, 롯의 아내, 사울 왕, 가롯 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들은 처음에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자들이었으나
후에 물질 욕에 빠져 심판을 받았다. 저들은 중생의 생명이 없이 일시 동안 하나님의 영과의 관계를 가졌던 것뿐이다.
마 치 발람의 나귀가 중생하여 구원에 들어 갈 수 없는 동물이지만 일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눈으로는 발람이 못 본 천사를 보았고 귀로는 발람의 말 곧 사람의 말을 알아 들었으며
입으로는 사람의 방언을 하였던 것 같다 (민22 : 12-30).

이상과 같이 하나님의 은사자들은 모두 물질에 청렴 하였다.
거듭 말하면 모세는 애굽의 왕위와 재물을 버렸고 (히 11 : 24-26),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준 엘리사 선지자는 그 예물을 받지 아니 하였으며 (왕하 5:)
바울은 모든 것을 배설물로 버렸고 (빌 3 : 4-6), 베드로는 재물을 7집사에게 맡겨 버리고
기도와 말씀 전 하기에만 힘쓰는 중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에게 줄 돈 한푼 조차 가지지 않았다 (행 6 : 1-4, 3:).
그러나 처음부터 악령 및 잘 못된 거짓 종들과 처음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가 타락된 자들은 교회를
이권 투쟁의 장소로, 신자는 상품으로 여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와 신자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싸우는 것이다

essence126.jpg

(5) 남녀 문제로 안다

성령을 받은 성도는 남녀 문제에 깨끗하나 악령 및 잘 못된 신비를 체험한 자들은 양심의 가책 없이 범죄 한다
이 문제에 대하여 좀 자세히 설명 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매우 복잡한 역사가 이미 있기 때문이다.

1, 성령의 은혜로 신령한 체험을 한 신자들에 대하여 먼저 상론 하고자 한다.

첫째 성령의 충만 함을 얻어 성령의 내주한 하나님께로 난자는 범죄 치 않는다.
옜날 의인 욥은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웟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욥 31 : 1),
“언제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던가 그리 하였으면 내 처가 타인의 매를 돌리며
타인이 더불어 동침 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욥 31: 9-10) 하여
남녀 문제의 깨끗함을 자증 하므로 사람이 남녀 문제에 가책이 없게 살 수 있음을 보였다.
바울 사도는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 :1 0-11)
하여 그리스도의 영이 안에 있는 자는 거룩히 살게 됨을 역설 하였다.

또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 : 24) 하여
정욕이 십자가에 목 박혀 죽어 거룩한 의인 욥과 같이 될 수 있음을 말하였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범죄 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일 5 : 18) 하였다.
옛날 요셉도 보디발의 처의 유혹에 범죄 치 아니 하였다 (창39 : 7-12).
이에 대한 결정적인 예수의 말씀이있다. 곧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 바리세인 보다 더 낫지 못 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하리라” (마 5 : 20) 는 전제 아래 구약시대 신자들은 양의 피와 인간의 양심으로 믿는 정도의 때이니
간음에 대하여 실범 만 없으면 의가 된다마는,
신약시대의 신자들은 예수의 피 뿌림과 성령을 받아 믿는 자들이니 구약 신자보다 더 나아야 할 것이다.
곧 마음과 눈과 손과 부부간에도 가책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마 5 : 27-32).
이와 같이 성령의 충만 함과 예수의 피에 깨끗하게 된 성도들은 마음으로나 눈과 손으로 까지 범죄 치 아니한다.

둘째는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하고 감동을 받는 정도 곧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한 정도의 사람에게는
이 남녀의 시험이 있다. 연약으로 범죄에 이를 위험이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젊은 종 디모데에게 사도 바울은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쫒으라” (딤후 2 : 22) 하여 청년 디모데를 주의 시켜 권면 하였다.

셋째로 만일 구원 얻을 신자가 성령 충만으로 세례를 받지 못 하였을 때 고의가 아닌 연약으로 가책이 있다면 회개하여
사죄함을 받으면 구원에 이를 것이다.
옛날 다윗이 침상이 썩도록 눈물의 회개를 함과 같은 상한 심령으로 애통하며 회개 할 때 사하심을 얻을 것이다 (삼하 12 :, 시 51).
이 죄를 가졌던 사람이 회개 하여 축복을 받은 사람들아 많다. 기생 라합은 다윗의 고조할머니가 되었으며 (수 6:, 마 1 : 5-6),
사마리아 여인은 창녀였으나 회개하여 사마리아 성을 구원 하였고 (요 4:).
간음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도 용서함을 받았다 (요 8 : 1-11).
물론 이상 열거한 사람들의 대개는 교역자가 아니였다 마는 이 죄도 회개의 희망이 있다는 점만은 의심 할 것이 없다.

예수께서 직접 하신 말씀에도 눈으로 범죄 한자는 눈을 빼어 버리고 손으로 범죄 한자는 손을 끊어 버리라 (마 5:29-30) 하심은
다시 범죄 치 않으면 사하심을 받는다는 말씀이었다.
손과 눈을 끊어 버리고 빼어 버렸으면 그 손 그 눈은 이미 없어짐이니 다시 죄를 지을 가능성이 전혀 없게 되었다.
예수께서 당장 음행 하다 잡혀온 여자에게 하신 말씀을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소개 하였다.
”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 사되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 치 말라 하시니라” (요 8:10-11) 라고 하였다.

이상에서 말한 개요는 성령의 충만으로 정욕의 성별을 받은 자들은 범죄 치 않으며 위의 정도에 이르지 못한 연약한 자들은
시험에 들 수 있으나 다시 범죄 치 않는 회개가 되어 지면 사함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고전 6 : 9-11)

2, 악령 및 잘못된 신비 체험자들

저들은 이 악한 죄를 가책도 없이 양심이 단 쇠에 화인 맞은 자들과 같이 쉬지 않고 범한다.
옛 구약 시대 발람 선지는 자기의 이권을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군병들에게 음행 하게 하였다.(민 25 : 1, 계 2:14, 고전 10:8).
심히 두려운 일이다.
또한 예레미아 선지자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은 간음을 행하였고 (렘 23 : 14),
거짓 예언을 한 시드기야와 그 일당 들이 그 이웃의 아내와 행음 하였던 것이다 (렘 29 : 21-23).

말세 교회의 거짓 종들이 두루 다니며 이 죄를 기탄없이 행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 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드려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 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쫒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벧후 2:1-2) 라고 하여 저 거짓선지자들의 호색에 여전히, 곧 많은 교회 여성 들이
좇을 것이라는 두려운 경고를 하였으며
또한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 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을 유혹 하며 탐욕에 단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벧후 2 : 14) 라고 하여 음심이 가득한 눈으로 쉬지 않고 범죄 하며 물질의 탐욕을 채운다는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딤후 3 : 1),
“저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인들을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음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딤후 3 : 6-7) 라고 하였다.
거짓 종들이 자기가 신령한 참 종이라 하여 이 집 저 집을 두루 찾아 다니며 유인 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유다 선생은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 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 하는 자니라” (유 4:) 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종이 된 것을 기화로 색욕에 이용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 하면서 그와 정 반대 되는 생활을
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들에게 받는 존경과 명예와 지위를 도리어 호색하는 일에 악용 한다는 말이다.

오늘날 해괴 망측한 일들이 많다.
어떤 자들은 피 가름 (거룩하여진 자기의 피를 통하여야 거룩해지며 구원을 얻는다고 유혹 하여 음행을 하는 것) 의
사교가 백주에 횡행 하고 있다.
한 교파는 한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를 두어도 좋다는 패륜의 집단도 있으며
어느 기도원 원장은 전국에 수십 명의 아내가 있어 복음 운동에 유익 하다는 자도 있다고 한다.
황공하게 예수께서도 여성들과 친하여 복음의 역사를 이루었다고 하는 저주 받을 악당 들이 있다는 것이다 .
자칭 성령으로 신비의 경험을 하였다는 그들이 왜 이같이 더러운 추행을범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저들이 경험한 모든 체험이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았음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이미 성별 되어 그 추악한 범죄를 범하지 않지만 아무리 큰 기적과 능력을 보이고
예언과 입신을 체험 하였어도 성령이 아닌 악령 또는 잘못된 체험 일 때는 육체 그대로 남아 있어
모든 죄를 여전히 짓게 되며 보다 더 범죄 케 되는 까닭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말하기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 5 : 19),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라” (갈 5 : 21) 라고 하였다.

성령으로 안수 받지 못한 신비 체험자 들은 본 성경 말씀에 의하면 음행일색이다.
안수 받으러 갔던, 그리고 안수 해주겠다 하여 갔던 많은 여성들의 회개의 고백은 정녕 거짓말 이었을까?. 두려운 일이다.
물론 참 종들과는 상관없는 사건이다. 이러한 종류에 속한 상습적인 범죄자들은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

히브리서 기자는 “음행 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년 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혀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 할 기회를
얻지 못 하였느니라” (히 12 : 16-17)하였다.
회개가 되어 지지 않는다. 버린 바가 되어 구원에서 제외 되었다. 실로 두려운 일이다.

사도 요한은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계 22 : 15)
하여 행음 자를 성 밖에 있으리라 하였고 둘째 사망인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할 것이라 (계 21 : 8) 하여
행음 자들의 최후의 멸망을 언명 하였다.
유다 선생은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자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기록되었다 하였다(유 4:0.
실로 불행한 자들이다.

우리는 오해 말자. 남녀를 신께서 지어 셨다. (창 1 : 26-30, 2 : 20-25).
남녀가 서로 사랑하며 결혼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하나님 친히 하셨다.
실로 우주를 창조하신 크신 목적 중의 하나가 인간이요 남녀 부부로 생육과 번성함에 있다.
그러므로 남녀의 사랑과 부부생활은 신성하고 귀한 것이다.
다만 일 남 일 녀의 경건함을 가지라는 지극히 높은 계율을 가지게 한 것은 하나님과 인간을 위하여 매우 당연한 일이다.
개와 돼지 같은 짐승과 구별되어야 할 인간이며 영원히 같이 살게 될 하나님을 닮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의 아들 및 하나님과 같이 되라는 하나님의 극진하신 인간에의 사랑이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모두 이 부부의 도를 지켰다. 옛날 에녹은 하나님과 3 백년 동행 하면서 자녀를 낳았다 (창 5 : 22).
여기에 밝은 빛이 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과 자녀를 낳는 부부 생활이 함께 있는 점이다.
오늘날 어떤 이는 하나님의 은혜만 받으면 부부 생활로 자녀 낳는 일을 불신성 하다 하며 또 다른 이는 부부 생활에만 살고
하나님을 망각한다. 둘 다 모순이며 잘못이다.

우리는 에녹의 바른 신앙을 배우자.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부부 생활)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구역: 더럽히지 말라)” (히 13 : 4)라고 하여
결혼과 부부동침을 신성하다 하였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애 대하여
“여호와는 영이 유여 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말 2 : 15) 라고 하였다.

우리는 주 안에서 남편을 존경과 사랑으로 순종하고, 아내를 목숨을 다하여 사랑 하라는 이 높고 깨끗한 남녀의 사랑을 누리는
축복과 특권을 지니며 추악한 남녀 사랑에 망하고 망하게 하는 음란한 세대에 본이 되어야 할 것이며
교계의 거짓 종들의 유혹에 대하여 힘써 싸워야 할 것이다.
먼저 성령의 세례에 의한 자기의 거룩을 힘써야 할 것은 물론이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 하여 진다.

(6) 당을 짓는 것을 보아 안다

성령의 은사를 경험한 자들은 본 4의 (3)항 의 화평과 거의 같이 모쪼록 화평하여 당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악령의 신비 또는 잘못된 거짓 종들은 당을 만들어 야심을 이루려고 투쟁한다.

1, 성령 곧 하나님의 은사를 체험한 자들은 하나 되기에 힘쓴다.

옛날 모세는 그 제자 여호수아의 편벽됨을 책 한 적이 있었다.
곧 “그 녹명된자 중 엘닷 이라하는 자와 메닷 이라 하는자 두 사람이 진에 머물고 회막에 나아가지 아니 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신이 임하였으므로 진에서 예언 한지라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고하여 거로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 하더이다 하매
택한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가로되 내 주 모세여 금 하소서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 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민 11 : 26-29) 하여
한 자리에 같이 오지 않고 따로 예언한 두 사람을 똑같이 여기며 오히려 여호수아를 책망 하였다.

또한 예수께서도 같이 다니지 아니한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다님을 금한 제자들에게 교훈하심이 계셨다.
곧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쫒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 하므로 금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 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 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막 9 : 38-40, 눅 9:49-50) 하셨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분리 작당케 하시는 신이 아니라 하나로 화평하게 하신다.
곧 성부께서는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 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 이니라” (엡 1 : 20-23, 17-23) 하여 유형, 무형 그리고 금새, 내세 모두가 하나 안에 충만하게 역사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라 하였다.
또는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경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 : 21-22) 하여 하나의 성전으로 연결되어 지어져 감을 말 하였다.

성자께서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 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자들에게
평안을 정 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 2 : 14-18) 하여
예수의 십자가로 유대와 이방을 하나로 하여 다시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성령께서도 하나가 되게 하시니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 : 3) 하였다.

이같이 성삼위의 역사는 오로지 하나 되게 하심에 있다.
그리하여 성령의 역사로 중생의 새 생명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 할례 당이나 야인이나
수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오 만유 안에 계시느니라” (골 3 : 11) 하여
인종이나 국경이나 또는 종이나 자유인이나, 그리고 빈부귀천, 유 무식 그 무엇이나 하나가 되는데 지장 되지 않는 다는 말씀이다.

이와 같이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 성도들은 분열이나 당을 만들지 않는다. 오직 하나가 되게 하는데 주력한다.
다만 부득이한 분파가 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첫째, 예수께서 아무리 하나가 되게 하시려 하였으나 되지 않은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마태는 다음과 같이 기록 하였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견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세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 23 : 37)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메시야를 기다린다는 그 유대교가 메시야를 거부함으로 유대교와 예수교와 둘이 되엇다. 하나이어야 할 것이 둘이 된 것이다.

이를 바울 시대에는 [나사렛파]라고 불리웠으며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형편 이었다 (행 28 : 22)
그리고 사도 바울을 이 [나사렛 이단의 괴수] (행 24 : 5) 라고 까지 하였다. 구역엔 [나사렛 당의 괴수] 라 하였다
마침내 두 파가 된 것이다.
여기서 명확한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은 예수께서는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과 같이 그들을 여러 번 모으려 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저들이 원치 아니 하였다는 점, 이 두 가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곧 예수 편에서는 하나가 되게 노력함에 반하여 저들은 하나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 전혀 상반 된 두 본질의 차이점이다.
이것은 물과 불로 상합 치 못함 같은 선과 악의 자연스러운 분리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실례는 성서와 교회사에 얼마든지 있다.

옛날 모세는 고라를 중심한 파의 사람들 곧 고라당과 하나가 되려고 힘쓰며 의논 하자고 초청 하였으나 그들은 끝내 거절하여
두 파가 되어 항거하다가 망한 일과 (민 16 : ), 참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의 두 파의 일(왕상 18) 이며
하나님의 영으로 예언한 선지자 미가야와 거짓말 영으로 예언한 시드기야를 중심한 4백 명과의 두 파의 일 (왕상 22:0,)
그리고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와 예레미야를 죽이던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과의 두 대립,
이 모든 사실은 예수 시대에도 또 이 세상 끝날 까지 있을 부득이 한파의 존재이다.

신약시대에 있어 특기 할 만 한 사건은 감리교의 창설자 죤 웨슬러 형제의 일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국가와 종교계의 부패를 통감하여 18 세기에 일어선 성자 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려 시작 할 때 영국 전부와 영국교회가 함께 그들의 없는 죄를 전국에 반포 하였다.
그리고 만일 그들을 접근 하는 자는 국가의 엄벌과 교회의 파문을 당할 것이라 경고하며 실제로 행동 하였다.

그러나 웨슬러 형제는 한번도 반항이나 변명은 물론, 미워하는 마음도 없이 전도 하여 신자를 얻으면 영국 교회로 가게 하였다.
그리고 자기들의 교회를 따로 만들지 않았다.
그들의 전기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형 죤 웨슬러가 따로 예배를 드린다는 소식을 다른 곳에 있던 아우 촬스 웨슬러가 듣고 그 형에게
왜 모 교회 인 영국교회로 보내지 않고 따로 예배를 드리냐고 충고 하였다.
그때 그 형은 “동생아 안심하라 내가 딴 교회를 만듬 이 아니라 우리가 전도하여 얻은 신자들을 영국 교회에 보내면
영국 교회가 이단자들의 전도를 받은 자들이라 하여 받지 않았다 기성 교회에서 받아 들이지 않으니 부득불 예배는 드려야 했다 .
비가 내리면 위를 가리고 바람이 불면 벽을 가리어 예배 드린것 뿐 이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전도 하여 얻은 사람들 중에 교역자의 자격이 있는 사람들의 안수 문제로 국내 국외 기성 교파에게 안수 하여 주기를
호소 하였으나 모두 거절을 당 하였다.
그는 번민 하다가 기도 중에 감동을 얻어 교역자 안수를 함에 이르렀다.

이 운동이 오늘 온 세계의 감리교회가 되어 큰 단체로 역사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참 진리의 사람들은 분열을 피하고 하나가 되려고 아무리 노력 하여도 저들로 인하여 둘이 되는 곧 두 파가 생긴다.
이러한 경우 예수와 모세 또는 죤 웨슬러가 파(당)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오직 저들 스스로가 당을 만든 것이 된다.
진리의 사람들은 당을 만들지 않는다.

둘째 정당한 교파의 존재는 당이 아니다.
마치 큰 강의 흐름에 주류가 있듯이 크신 진리의 역사에 당연한 지류가 있다.
또한 어느 가정에 많은 아이들이 있을 때 한집에서 다 같이 살 수 없어 분가함과 같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의 세계에도 분가와 같은 분파가 있다. 자녀들이 그 어버이 뜻과 어버이를 섬기는 일에 바른 뜻 안에서도
각기의 의견 따라 달리함 같이 하나님의 뜻과 그를 섬기는 일에 올바른 진리 안에서 다소 각기의 신앙에 따라 역사 할 때 분파가 생긴다.
물론 이단이 아닌 범위 안에서 말이다.
실례를 들면 침례를 주장하는 침례교, 감독제를 취한 감리교, 장로제를 취한 장로교 등 각기 성서 안에 있는 진리를 중심 하여 세워진다.
이 같은 교파는 이단의 당이 아니다.

셋째 편당이 필요한 때도 있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분쟁이 있을 때 편당이 있어야 둘 중의 옳다 인정함을 받을 자들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고 전 10 : 19) 라고 바울이 말하였다.

넷째 어린 신자들에게 파 싸움을 하는 경우가 있다
바울은 파 싸움을 하는 자들을 육신에 속 한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 들 같이 밥이 아닌 젖으로 먹이다 (고전 3 : 1-3) 하였다.
그들에게 한 말에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 에게라 하니 너희가 믿는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었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한 사역자들 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고전 3 : 4-7) 라고 하였다.

같은 복음의 종과 교파에 서로 싸우는 파나 종이 있을 수 없다.
만일 있다면 위의 말씀과 같이 어린 신자들로서
아직 신령치 못한 자들이며 육신에 속하여 시기와 분쟁을 하는 자들의 정도 이다.

이상과 같이 부득이한 분파 가 인간 들 사이에 있다.
이러한 분파도 엄밀히 따지면 당은 당이다.
그러나 바른 앎과 잘못 앎의 관계에서 발생한 분파이지 고의의 악당은 아닌 것이다
본 항의 당을 짓는다는 의미는 이단자들의 야욕을 달성 하려는 목적으로 고의적 작당을 뜻한다.

2, 악령 및 잘 못된 신비를 체험 한자들 곧 거짓 종들은 자기들의 정욕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방법을 다하여
자기 자랑과 이간과 중상모략 등으로 분열 작당 하여 모든 악을 행 한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과 복음을 위한다는 미명과 형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르며 미혹된다.

예수께서도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마 24 : 11) 하사
말세 교회에 있을 많은 신자들이 많은 거짓 선지자들을 참 종으로 알고 따르게 될 것을 예고 하셨다.
심지어 택하신 자들도 미혹 할 것이라 하셨으니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 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 하게 하리라” (마 24 : 24) 하사
보통 신자가 아닌 입은 성도 까지도 미혹 할 만 한 여러 가지 재주로 유혹 당하게 할 것 이라는 말씀이다.
그들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당이 되어 기성 교회와 건전한 진리 운동에 정면 투쟁을 할 것은 물론이다.

사도 바울은 당을 짓는 것은 육체의 일이라(갈 5:19-20) 하였다.
참으로 성령의 은사로 신령한 체험을 한 자들이 아닌 다른 신비가 들은 당을 만들어 정욕을 행한다.
유다 선생은 그들에 대하여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유 19:, 구역은 혼은 있고 신은 없는 자) 라 하였다.
자기 들 만이 성령을 받았다 과장 하지만 중생의 생명이 없는 자들 곧 성령이 없는 자들이라는 말씀이다.
사실 성도 에게는 영(신) 과 혼(영혼)과 몸,
이 세 가지가 있으나 중생 못한 자들에게는 아무리 어떤 신비를 체험 하였어도 영혼과 몸, 둘 뿐이요 신은 없다.

유다서 19절 구역은 “혼은 있고 신은 없는 자” 라고 하였다. 저들은 명예와 물질과 호색에 생사를 다 하여 쟁탈을 하지만
참 종이라고 자기들을 과장 선전 하며 할 수 있는 모든 재주를 부린다.
그리하여 모이는 사람들로 당을 만든다.
다른 교파와 열심히 싸우다가 (교파를 위 한다는 미명아래) 자기 교파 안에서 또 싸운다.
이를 위해서는 교파 따위가 안중에 없이 독립당으로,
또는 다른 교파로 날뛰며 때로는 기도원을 만들어 근거지를 만들기도 한다.
그들의 얼굴과 눈은 때로는 신령한 척 하지만 간사와 교활 과 음심과 살기가 빛나며
그들의 입에선 하나님의 말씀을 한다지만 죽이는 독과 악이 쏟아져 나온다.
그들의 거동은 거룩한 척 하지만 사나운 이리떼의 험한 모습과 사나운 독수리와 같다.

3, 성도들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 이니라” (요 2 : 10-11) 하였다.
이 말씀은 당을 만들라는 뜻이 아니요 이단의 도와 곧 이단자와 하나가 될 수 없는 생활 태도를 의미 한다.

성령으로 된 자들은 죄와 비진리 그것과 타협 되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 하여 죄를 미워할 뿐
사람은 미워하거나 끼리끼리 당을 짓지 아니 한다.
진리 운동에 바르게 동참하는 그 어느 사람도 거부 하지않고 동생 동사로 하나님께 충성 한다
이상과 같이 당을 짓는 자들과 짓지 않는 자들을 보아 바르고 그른 것을 안다.

(7) 사랑을 보아 안다
사람을 사랑 하느냐 미워 하느냐에 따라 성령의 사람 인지 악령 또는 잘못된 사람 인가를 알게 된다

1,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 자들은 무엇 보다 사랑의 사람으로 변한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다” (요일 4 : 8, 16:).
하나님께로 난 자녀들은 사랑의 사람이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 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 하며 너희를 핍박 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 즉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 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 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 하면 남 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나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
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마 4 : 44-48) 하였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야 하는 것이다.
원수까지 사랑하며 핍박 자를 위하여 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성 삼위는 모두 사랑이시다.

성부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고 (요 3 : 16),
성자께서는 우리를 사랑 하사 목숨을 버리셨으며 (요일 3 : 16),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사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 하여 주신다 (롬 8 : 36).
그러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은혜를 받은 자 곧 체험 한자들은 사랑의 화신이 되어야 마땅하다.

바울은 성령의 첫째 열매를 사랑이라 하였다 (갈 5 : 33).
뿐만 아니라 사랑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 보다 , 또는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아는 예언 보다,
그리고 산을 옮길 만한 더 큰 은사며, 제일 좋은 길이라 (고전 12 : 31, 31 : 13. 2:) 하였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말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광주리를 타고 다니면서 까지 사랑하라 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그 자녀 들은 사랑으로 살고 죽는다

2, 악령 및 잘못 된 체험자들은 하나님과 사람 보다 자기와 돈과 쾌락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여자를 더 사랑 한다 (딤후 3 : 1-7).
그리하여 참으로 사랑 하여야 할 것은 도리어 미워한다, 마치 가인을 아벨을 (창 4:), 고라가 모세를 (민 16),
시드기야가 미가야를,(왕상), 예루살렘 종교가 들이 이사야와 예레미아를 미워함과 같다.
또한 예수와 사도들을 미워한 유대 종교가들과 같이 거짓 종들이 참 종들을 사랑 하지 않고 미워하는 역사는
이 세상 끝날 까지 있을 것이다.

곧 사랑과 미워함,
이 둘의 여하에 따라 성령의 체험자 또는 악령과 잘못된 체험자의 여하가 판별 된다는 말이다.
성령의 체험자에게 미움이 없듯이 악령의 체험자에게 사랑이 없다.

성령의 9가지 은사를 체험한 성도는 곧 사랑의 사람이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이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 7 : 18),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 : 20).

essence127.jpg

6 성령과 악령과 인간 신비의 길

이 문제도 실로 중요한 문제이다. 매우 힘든 어려운 항목이다
주님 안에서 설명하며 또한 체험과 감동으로 된 일들을 참고하여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1, 성령을 받는 길

성령은 사람의 수단 방법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역사로 받게 되는 것이다.
만일 방법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이 성령을 받게 될 때 그 받아지는 순서를 방법이라 할 수는 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인 동시에 사람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 방법은 성령을 받게 된 성서의 기록에서 그 명확한 정로(正路)를 알게 된다

(1)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성령을 받으라는 부탁하신 말씀에서 먼저 볼 수 있다.

이는 성부 곧 여호와를 중심한 구약시대 다음 성자시대 33 년에 이어 성자의 승천 후 성령 시대가 되는 까닭이었다.
삼위께서는 항상 같이 역사 하시면서 또 직무와 시기에 각각 삼위의 시대가 있다.
인간은 약하여 단독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지 않으면 않된다.
그러므로 성자의 승천 후의 사도들에게 성령이 오사 같이 하셔야 한다.
이를 예수께서 마라 말씀 하셨으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 : 16) 하셨고
또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 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 : 7) 하여
성자께서 떠나가신 후에 성령 곧 보혜사께서 오시게 될 것이라 하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려 성령을 받으라 하셨다.

이 사실은 사도행전 1장에 수록 되었다. 살펴보면 성령을 받게 되는 데 세 가지의 사실을 발견한다

1, 첫째 믿음이다. 곧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이다.

A, 성부에 대한 믿음은 성령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는 것이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약속 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 : 4) 하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구약시대부터 이미 약속 하셨으니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
곧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 할 것이요 여호와의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락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에게 강림 하시리니” (사 11 : 1-2) 라고 하였고
또 요엘 선지자로 하신 말씀 곧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 들이 장래 일을 말 할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우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엘 2 : 28-30) 하여
성부 곧 아버지의 약속을 미리 알려 주었다.

이 아버지의 약속을 받은 베드로 사도는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 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 사대 말세에 내가 내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 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 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 2 : 16-21) 하여
성령은 아버지의 약속 하신 것이라 증거 하였다.

약속 하신 것을 믿고 기다린다는 것은 성령을 받는 일에 절대를 의미를 가진다.
약속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인바 여기서는 성령의 약속을 말 한 것 이지만
구약 (옛 약속)과 신약(새 약속)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다.
곧 성서의 말씀은 모두 하나님의 언약 곧 약속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약속을 믿고 기다린다는 것은 성서의 말씀을 믿고 기다린다는 것과 똑같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려면 먼저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믿는다는 것은 마음의 일이요 기다린다는 것은 행동의 일이다.
마음으로 믿고 실제로 행동하는 이 둘이 함께 될 때 성령을 받는 첫째 준비가 된다.
말씀 없이 성령의 임재는 없고 실재 행동 없이 역사는 일어 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 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하셨던 것이다.

essence055.jpg

B, 성자에 대한 믿음은 7가지로 기록 되었다.
곧 행적, 교훈, 죽으심, 부활, 승천, 천국, 재림이다.(행 1 : 1-3, 9-11).
다시 말하면 행하신 모든 일, 가르치신 모든 말씀, 속죄의 죽으심, 영육의부활 하심이 참된 사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영원한 천국의 실존,
말세에 다시 오실 이 일곱 가지를 그대로 믿는 그 믿음이 성령을 받는 일에절대적인 의미를 가진다,

C, 성령에 대한 믿음은 세 가지이다
곧 아버지의 약속이니 반드시 받게 될 것이다 ,
성령의 세례로 성별 될 것, 권능을 받을 것 (행 1:4-8) 에 대하여 그대로 믿는 일이다.

이와 같이 성령을 받게 되는데 있어 제일 먼저 필요 한 것은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이는 예수의 성령 받을 사도들에게 부탁 하신 첫째 말씀이다

2, 둘째는 기도이다.

“약속 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 : 4) 하심은 기도 하라는 말씀과 같다.
성령을 받으려 기다리는 것은 기도 뿐이다. 그리하여 저희들은 다락에 올라가 성령을 받을 때까지 기도 하였던 것이다.
저들의 기도 하는 일에 세 가지의 사실이 있다. 곧 연합 (더불어), 합심 (마음을 같이 하여),
전력 (전혀 힘쓰니라) (행 1:14) 하였다.
실로 기도 함에 있어 연합, 합심, 전력 이 세 가지가 없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기도가 성령 받을 때의 둘째 요소이었다.

3, 셋째 사도를 보선하였다.

성령을 받기 직전 사도를 보선하는 이유가 세 가지로 발견 된다.

A, 분위기를 바로 잡으려 하였다.

그때 120 명이나 되는 형제들이 3년간 같이 다녔으며 또 예수의 친히 택하신 가롯 유다가 배신한 일과
또 몸이 곤두박질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나와 죽게 된 일 (행 1 : 15-19) 을 상기 하여 물의가 일어나
성령을 받으려고 모인 다락방의 분위기가 문란 하여 냉각 되고 있었다.
그 때에 베드로는 그 분위기를 고치기 위하여 일어나 사도 보선을 제의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가롯 유다의 죽음은 “마땅하도다” (행 1 : 16) 하여
그들의 의혹을 풀어 주고 성령을 받을 분위기로 마음을 집중 시켰던 것이다

B, 수를 채우려 함이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때와 장소와 수가 있다. 그 수에 있어 구약 시대는 열 두 지파요 신약시대는 열 두 사도이다.
가롯 유다의 죽음으로 열 한 사도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열 둘의 숫자를 채워야 하였다 (행 1 : 17-22).

C, 성경을 응 하게 하려 함이다.

베드로는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 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이리 말씀 하신 성경이 응 하였으니” (행 1 : 16)
마땅하다 하였고
또 “시편에 기록 하였으되 그의 거처로 황무 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 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행 1 : 20-22) 하여 예언을 이루는 사도 보선이었다.

이와 같이 성령을 받으려는 직전에 사도 보선으로 분위기를 집중 시키며 수를 채우되 성경을 응하여 이루게 하였다.
다시 말하면 분위기, 수, 성경대로,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성령을 받으라는 부탁과 그 부탁을 받은 사도들의 성령을 받기까지의 사실을 기록한 사도행전 1장에서
이상의 세 가지 곧 믿음, 기도, 사도보선을 보여준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 곧 성경을 믿는 일이요
기도는 약속을 기다리는 일이며
보선은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수의 보충인데 분위기의 집중과 성경을 응하여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

개인의 경우도 믿음 약속), 기도(기다림), 보선(자기 심령의 집중과 자기 심령이 성령을 받는데 지장 되어
모자란 부분을 성경의 뜻 안에서 보충함)은 절대 필요한 것이다.

(2) 베드로가 마음에 찔림 받은 군중들의 질문에 대답한 말에서 성령을 받는 길을 본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행 2 : 37-39) 하였다.

여기 주목 할 것은 마음에 찔림, 회개함, 세례 받음, 죄 사함 얻음,
이 네 가지 역시 성령의 역사 이어늘 이 네 가지를 얻은 후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하는 점이다.
이는 찔림, 회개, 세례, 사죄, 이 네 가지는 성령의 책망과 권고의 역사이며 이것이 해결 된 후에 성령을 받으리라 함은
네 가지 체험으로 성화 되어 주의 영이 거 하신 거룩한 전이 된 후에 성령이 내주 하시게 됨을 말한 것이다

사도들 역시 오순절 성령강림 이전에도 권능을 행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성령의 능력을 행하던 그들 이었으나
오순절 때 예수의 말씀대로 성령을 먼저 받고 뒤에 성령의 내주로 권능을 얻어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었다.
그러므로 성령은 처음에는 책망과 권면으로 강한 감동의 역사를 일으켜 마음에 찔리는 회개와 세례와 죄 사함을 얻게 하지만
회개하여 죄 사함을 얻은 성도의 마음에 내주 하시는 일은 같은 것 같으면서 전혀 다른 가장 높은 은혜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과 감화와 내주는 같은 성령의 역사 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각각 다르다.
본 체험론의 [내주] 항목을 참고 하기 바란다.
본 항에서 베드로의 죄 사함을 얻은 후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을 깊이 명심 할 것이다.

그러므로 찔림을 받아 회개 하여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지 못한 자에게는
성령의 책망과 권고의 감동 정도의 역사가 있을 뿐 그들 속에 성령이 내주 할 수 없다.
성령이 거 하실 만한 전이 되지 못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자들 에게 내주의 영이 있다면 그 영은 성령이 아니다

(3) 초대 교회 시대 성령의 역사를 사도행전에서 살펴 성령을 받는 길 곧 방법을 알자.

한 가지 알 것은 성령을 받는 사람에 따라 그 분량이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1, 4장에서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한 일이 있었다 (31). 여기 충만 이라 함은 성령을 새로 받았다는 것이 아니요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때에 따라 더 충만 하였다는 말이다.
베드로와 여한이 핍박 중에 담대히 강연 후 풀려 나와 동료에게 가서 보고와 찬송과 기도드릴 때의 일 이었다 (23-31).
그 때의 그들의 동류는 이미 성령을 받은 자들이었다.
핍박 중에 놓여 나온 사도들의 보고를 듣고 찬송과 기도를 드릴 때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 하더니
무리가 성령이 충만 하였다는 것을 본다.

2, 8 장에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라
그들에게 안수 할 때 성령을 받는 일이 있었다. (14-17).
저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음은 이미 죄를 회개하여 죄 사함을 얻어 있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을 수가 있었다.
사도들의 안수 때 사도들이 손으로 성령을 준 것이 아니라
안수 하여 축복과 성령을 받게 되기를 기도 할 때 성령이 임재 하신 것이다.
여기서는 이미 세례 받아 죄 사함을 얻어 있었다는 것이 성령을 받게 되는 요소이다

3, 9 장의 바울의 성령 충만 (17)을 얻은 일에 대한 자기의 간증은 다음과 같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불림을 입기 전의 자기를 간증 하는 말에서 그가 부르심을 입을 수 있었음을 발견한다.
자기가 교회를 핍박 하던 일을 하나님께 대한 열심 (빌 3 : 6, 행 8 : 4-, 33 : 3, 갈 1 : 13-1·4) 이라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셨다 하였으니
곧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 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 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 하였음이라” (딤전 1 : 12-13) 하였다.
그리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다” (빌 3 : 6) 하였다.

이상과 같이 바울이 구약시대의 율법적 신앙의 때에 자기로는 하나님께 열심히 충성 하였고
흠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스스로 증거 하였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그리하여 바울의 그 열심. 그 충성 그리고 흠 없는 생활을 충성 되이 보사 알지 못하고
하던 일을 바르게 알고 하도록 바꾸어 주심이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자기의 최선을 다하여 열심과 충성과 흠 없는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부르사
성령을 충만케 하시어 사도로 삼으셨다.
열심도 충성도 없으며 그리고 율법의 의로 흠 없는 정도도 되지 못한 사람이 부르심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4, 10 장과 11 장에는 고넬료 가정에 성령이 강림 하신 일에서 성령 받게 되는 길을 볼 수 있다
고넬료는 성령을 받기 전 이미 성령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 하더라” (10 : 2).
그는 이미 경건, 경외, 구제 그리고 기도의 사람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의인이며 칭찬을 받으며 천사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그를 중심 하여 모인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 오셨던 것이다.
준비가 된 자들이 말씀을 중심 하여 성령을 받게 되는 것이다

5,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 한자라” (11 : 24) 하였다

바나바 역시 이미 착한 사람으로 준비가 되어 있었고 믿음(말씀)충만, 성령 충만 이었으니 성령 충만이 말씀 충만 이요
말씀 충만이 성령 충만 이다. 성령의 임재는 미리 착하게 되게 역사 하시고(죄 사함을 얻음 행 2 :3 7-38) 말씀을 중심 하신다.

6,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성령이 충만 했던 일을 13장 기록에서 본다.

역시 말씀 중심 이었으니 율법과 선지자의글(구약성경) 을 읽었으며 (15:) 저들이 말씀 듣기를 요청하였고 (42),
온 성이 그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모였으며 (44) 말씀을 찬송하고 (48),말씀이 두루 퍼졌다 (49).
말씀을 믿었던 (48)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충만하게 되었다 (52).

7, 두아디아성의 자주 장사 루디아가 은혜를 얻어 자기와 자기가정은 물론 바울의 이방 전도에 뺄 수 없는 동지로
빌립보 교회를 중심 하여 일생을 동사 하였다.
“거기서 빌립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성에서 수일을 유 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케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행 16 : 12-15)하였다.

이 사실에서 성령 이라는 말씀이 직접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케 하신지라” (14 :)가 곧 성령의 역사로 나타난다.
루디아 역시 이미 하나님을 공경하고 기도하던 사람이며 말씀을 들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듣고 순종) 하게 하신 것이었다.
곧 하나님 공경, 기도, 말씀 들음, 마음 열림, 순종, 세례, 봉사(이때부터 바울이 순교 할 때까지) 의 순으로
은혜 받은 경로를 보이고 있다.

8, 바울이 예배소서에서 성령이 임하게 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예배소에 와서 어떤 제자 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 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 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행 19 : 1-7) 하였다.
여기서도 예배소 신자들이 이미 회개하여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아 있었다.
그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 후에 성령이 안수 할 때 임하였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고 성령은 다음에 받은 일이 많다.
세례 요한의 회개하는 물 세례와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와 성령을 받는 일이 대체적인 순차이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 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 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 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 하매 성령을 받은 지라” (행 8 : 14-17) 하였다.

위의 두 사실을 종합 할 때
1, 말씀 받음 (행 8 : 14),
2, 요한의 세례) (행 19 : 3-4),
3, 주 예수의 세례 (행 19 : 5),
4, 성령 받음 (행 8 : 17,19 : 6) 이 같이 4단계로 되었다.
이것이 성령을 받게 되는 바른 길이요 방법이다.

2, 악령을 받는 이유

왜 기도하는 사람이 성령을 받지 못 하고 악령을 받는 사람이 많은가?.
예수께서 하신 말씀
곧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늘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 : 9-11) 하셨거늘
어찌 기도자가 악령을 받는 일이 있다는 것일까? 의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도 한다는 사람들이 악령을 받는 일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큰 문제이다. 그럼 그 이유를 삼가 말씀 드리어 귀하에게 축복되기를 바라겠다.

(1) 성경을 통하지 않을 때
말씀 곧 성경을 믿고 순종 하는 일 보다
신비 곧 기사, 이적과 예언 방언 등을 더 좋아하는 자들은 성령을 받지 못하고 악령을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아래 있는 지도자나 신자로서 누가 성경을 무시 하랴 만은 성경은 말 뿐 신비에 열중 할 때 다 잘못 된다.
또는 성경 중심 이라 하여도 바르게 알지 못한 자기중심의 풀이를 하는 자들과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여 실행이 없는 자들도
거의 같은 처지에 있다 특히 성경으로 예수를 가르치면서 예수와 상반된 말을 하는 거짓 선지자(거짓 종) 들은
모두 성령을 받은 자들이 아니다.
예컨대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여 가르치는 자가 천국에서 크다” (마 5l19) 하셨으나
거짓 종들은 “성경(말씀)보다 예언과 방언이 제일이라” 주장 하며 가르친다.

예수를 전하면서 예수를 배반하는 거짓 선지자들이요
반 그리스도 적그리스도들 이지만 많은 사람이 잘 모르고 그들을 따르고 있다.

1, 옛날 솔로몬은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성경말씀)을 듣지 아니 하면 그의 기도는 가증 하니라” (28 : 9)하였다.

신자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 순종하는 목적에서 한다. 성경 말씀은 이미 발표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명확한 뜻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은 도외시 하고 하나님의 뜻이 전혀 없는 것처럼 기도만 하는 것은 실로 가증하다.

2, 모세는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 하던 다른 신들 (악령)을
우리가 쫓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 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깨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 (따라 순종) 하고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 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 할지니라”
(심 13 : 1-5) 하였다. 이 말씀에서 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말씀 곧 성경중심에 있음을 밝히 보이셨다.

즉 여호와를
순종 (말씀 순종 4),
그 명령을 지키며 (4),
그 목소리를 청종 (4)
그 에게 부종하고 (4),
명하신 도를 행하라(5), 이같이 다섯 번 거듭 말씀을 강조 하셨다.
그러나 잘 못된 자들은 꿈을 꾼 것과 이적과 기사를 보이어 하나님의 말씀에서 꾀어내려고(5) 한다.
그들은 악하니 죽이라 (5)고 까지 엄명하였다.

3, 사도 바울은 말세에 대한 성령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소개 하였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 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 (진리 곧 성경)에서 떠나 미혹 하게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딤전 4 : 1) 라고 하였다.
본문에 “믿음에서 떠나” 라는 말씀은 성경 말씀을 믿는 믿음에서 떠났다는 말씀이다.

이같이 믿음에서 떠난 그들은 미혹하는 영 (성령처럼 나타나 성령으로 믿게 하는 악령) 과
귀신(성령처럼 나타나 미혹 하는 신) 의 가르침을 참 종으로 참 성령의 역사로 잘못 알고 좇으리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참 신자는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지는 일에만 열중 한다 (딤전 4 : 5).
또한 바울은 말세 교계에 잘못된 자들과 바르게 된 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 하였다.

잘못된 자들은 진리 (하나님 및 성경 말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후 2 : 10)
또 진리를 믿지 않고 (살후2 : 12),
불의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 곧 신기한 것)을 좋아하여
유혹(11)의 역사 가운데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거짓 것(11)을 믿게 되어 심판을 받아 구원함을 얻지 못한다 하였다.
그러나 참 신자들은 진리의 사랑을 받고 진리를 믿으며 신기한 재주만 얻으려 함으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 (잘못된 자들은 거룩은 없이 신기한 재주만 얻으려함)으로 영광의 구원을 얻는다(13 : 14) 하였다

4, 예수의 광야기도 후에 찾아온 마귀를 말씀으로 물리쳤다.

그 마귀는 성경까지 인용하여 인류를 구원 하시려는 예수에게
3가지 (경제, 이적, 영광의 지위와 권세) 방법으로 성공하라 시험 한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인류가 살게 된다 하사 말씀으로 물리치신 것이었다.
예수에게 왔던 악령은 지금도 기도자에게 온다.
그리하여 경제와 기사, 이적과 교권을 가지고 복음운동을 성공 하라 시험 한다
이 때 성경 말씀의 충만함이 없는 사람들은 변별력과 물리칠 힘이 없어 그 악령의 지시를 하나님의 지시로 알아 그 영을 받으며
또 그대로 행하게 된다. 예수와 말씀 중심의 신자들은 그 영이 마귀 곧 악령 인줄 알게 되지만 성경 말씀을 등한시 하고
신비에 열중한자 들은 그 영을 성령으로 알고 받게 된다.
그리하여 경제, 기사, 이적, 자리다툼(교권) 등으로 소란케 한다.
받은 후에 악령 인줄 알게 된 자도 있고 끝까지 성령 인줄 속는 자도 있다.

악령이라도 자기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어서 참 성령을 받은 줄 알아 스스로 도취 되어 열심과 봉사와 사랑을 한다마는
조금 지나면 자기 도취가 식어지고 악령의 본질이 차츰 들어 나기 마련이다.
실로 불행한 일이다.
예수의 말씀과 같이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 치 않는 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좇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 하였나이다” 하 였다.
예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 7 : 21-23) 하셨다.
여기서 발견 되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 하여 행하지 않고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들도
귀신을 내어 쫓고 모든 권능을 행하여 선지자 노릇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 자기들이 자신 있게 칭찬 받을 줄 알고 있었던 착각한 점으로 도리어 예수의 책망 곧 알지 못 한자,
불법 (말씀 순종으로 됨이 아닌 것)을 행한 자들이라 하사 쫓아내신 일이다.
여기서 말씀 곧 아버지의 뜻인 성경 말씀대로 행치 않은 자들의 체험으로 행한 모든 기적과 권능은 불법에서 온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법대로 성령으로 온 권능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이상과 같이 성경을 바르게 통하지 않는 영은 악령이다.
말씀 없이 영을 구 할 때 악령을 받게 된다.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2) 죄가 있어도 내주 한 영은 악령이다.

누구든지 죄를 그대로 두고 성령 만 받겠다고 잘 못 기도 할 때 악령을 받게 된다. 악령은 죄 있는 곳에 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은 죄를 책망 하시는 역사를 하지만 죄 있는 곳을 거하실 전으로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회개 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행 2:38) 하였다.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 성전 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 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들도 그러하니라” (고전 3:16-17) 하여
거룩한 전이 된, 곧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세례로 거룩 케 된 성도 안에 거 하신다 하였다.
또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나” (롬 8 : 9)하여
하나님의 영이 계시면 육신에서 성별 되어 신령한 성도가 된다 하였다.

이같이 성령은 거룩하게 된 성도에게 계시지마는
악령은 죄가 있어도 그 속에 거하기 때문에 죄를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지 못 한자들 에게도
성령으로 가장하여 그들 속에 들어 가하여 갖가지로 미혹 한다
죄가 있는 자라도 죄를 회개 하여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받게 된다.
죄 사함을 받지 못 한 그 사람 속에 거하는 영은 미혹하는 영이요 악신이다.

(3) 골방에 들어가서 숨지 않는 자들이 악령 및 거짓말 영을 받는다.

옛날 아합 왕 때에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사귀는 기도보다 왕궁 출입에 분주한 시드기야 일파 4백 명 선지자 들이 있었다.
저들이 거짓말 영을 받은 줄도 알지 못하고 골방에서 하나님과의 교제에 전심한 참 선지자 미가야에게 빰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 하더냐 하였다.
미가야 선지는 네가 골방에 숨는 날에 보리라 하였다 (왕상 22 : 24-25).
하나님과 진리 보다 부귀 공명에 분주한 자들은 성령을 받지 못하고 악령을 받는다.

(4) 성령을 이용 하려는 자들은 악령을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입에서 떼지 아니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순종하고 행하는 일에서 떠나
신기한 재주로 나타나는 기사, 이적과 예언 방언 등을 얻으려 노력하는 자들은 자기의 명예와 이권을 위하여 악용 하려는 자들이다.

성령의 감동에 순종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를 이용 하려는 자들은 모두 악령 곧 미혹 하려는 영을 받게 된다.
초대 교회 시대에 베드로와 요한의 안수로 성령 받음을 본 시몬이 돈을 주고 그 재주를 얻으려고 하다가
책망을 받았다 (행 8 : 18-24). 말세 교회에 많이 일어 났다

essence117.jpg

3. 인간 신비의 길

순 인간으로만 7종의 체험이 가능하다.
인간 신비의 종류도 그 수가 매우 많으나 여기서는 중요한 몇 가지만 쓰기로 하겠다.

(1) 인간의 수양으로 된다

유교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수양하여 체험한 도인들이 많다.
곧 허(虛), 영(靈), 지(知), 각(覺), 신(愼), 명(明), 이 여섯 가지의 체험이 되어질 때 통영으로 신비를 체험한다.
이 수양 방법은 다음과 같다.

ㄱ, 정좌 한다. 마치 불상의 좌상과 같다, 이 정좌는 중심을 잡는다.
ㄴ, 양편 발을 양쪽 무릎 관절 굴곡진 곳에 가볍게 얹는다, 이는 혈맥이 통하는데 지장이 없게 함이다.
ㄷ, 손바닥을 양편 무릎 위에 역시 가볍게 얻는다. 이는 전체의 지주가 된다.
ㄹ, 얼굴을 정면으로 한다.
ㅁ, 눈의 시선은 자기의 코 끝에 힘 쓰임 없이 집중시킨다.
ㅂ, 시각, 청각, 후각, 그리고 온 마음과 온 정신을 한 초점에 집중 시켜 하나가 되게 하는 일이다
ㅅ, 코로 호흡하는 공기를 깊게 빨아들인 후 내어 뿜을 때는 조금 남겨 둔다.아랫배에 힘이 담겨져 심신이 든든하여 진다.
점점 호흡정돈, 후각정돈, 시선정돈, 그리고 마음 정돈이 되어 질 때 격물치지(格物致知) 와 통영이 된다.
정신통일 곧 마음 정돈이 완전히 이루어진 그것이 도요 신비는 기술이지 도는 아니지만 체험할 수 있다.

불교 역시 순 이간 본위의 종교로써 마음의 도이다.
무념(無念)무아(無我), 한 생불이 되면 시공의 제한 없이 형이 상하에 통한다.
신비 따위는 오히려 사도로 여긴다. 유, 불, 선의 종교계에 신비의 실화는 너무 많다.
그들의 신비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순 인간의 소산이다.
우리가 존경하고 많은 배움을 얻으며 인간으로의 높은 도를 얻게 해주는 고마운 종교들이다.

(2) 감정을 극도로 흥분 시켜 감정을 넘게 하여 감각적 신비를 체험케 한다.

곧 찬송과 기도를 뜻도 곡조도 무시해 버리고 박수와 머리와 몸을 흔들며 모쪼록 빠르게 또 빠르게 몰아쳐 시키면
자기도취에 감정이 북받쳐 넘는다.
그러면 질식 또는 자기 이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며 말하기도 한다.
마음과 몸도 비정성의 상태에서 행동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여러 가지 체험을 하는데 그것은 성령이나 악령의 체험이 아닌 순 인간 감정의 작용에서 오는 따위와
앞에 말한 것 같이 이방종교에서 진언과 주문을 열심히 외우면 강신 하였다 하며 진동과 기사, 이적을 하게 되는 그것과 같다.
옛날부터 많이 있었던 일이다.

구약시대 이방나라에서 아세라와 바알 선지자들이 각기 자기들의 종교의식에 따라 주문과 진언을 기도처럼 외우며
계속 열을 올려 그 극에 이르면 진동과 예언과 방언 그리고 이적 기사가 그들대로 일어났다.
저들은 신이 내렸다고 믿고 있으나 인간의 감정이 흥분하여 그 고비를 넘으면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때 사람들은 진동을 강신의 역사로 알아 스스로 도취되며 그 진동의 힘을 제어 할 수 없어
골짜기에 떨어져 죽거나 중상을 입기도 하였다.
또는 서로 붙들고 진동 하다가 남녀 관계로 그 정력이 소모될 때 기진하여 조용해진다.
그들은 이것을 음행으로 생각지 않고 신에게 몸으로 산 제사를 드렸 드니 받으시고 올라 가셨다 하여 영광으로 생각 하였다.
이를 위하여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진동이 강하게 올 때 나무 사람에게 몸을 제물로 주었다.
역시 신성한 제사의 제물로 여겼다.

(3) 기합술과 체면술 또는 마술 등으로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세계 각 나라 실화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4) 성령과 악령과 인간의 신비를 경험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어떤 사람들이 자기가 함께 한 그 종류의 신비를 경험 하는 때가 있다.
전혀 무심한 가운데 경험이 되기도 한다.

이상은 성령을 받는 법과 악령을 받는 원인과 인간 신비의 여하를 논하였다.

essence118.jpg

7 주의 사항

제 2부의 1에서 4까지의 모든 사실을 통하여 주의할 요점을 들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신비에 세 가지 곧 성령과 악령과 인간 신비가 있음을 깊이 명심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성령과 악령의 영이 말세 교회를 무대로 최후의 역사를 할 것이라는 모든 예언의 말씀을 믿고 주의 할 것이다

2, 오직 말씀과 피차 안에 거하여 순종하고 죄 사함을 얻어 성별 되며 성령께 복종 하려고 기도하는 자는 성령을 받는다.
그러나 말씀을 행하지 아니하고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며 죄에서 떠나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성령의 은사를 자기 정욕대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신 자요
그의 기도는 죄로 변하여 (시 109:7) 응답이 없거나 악령을 받을 것뿐 이다.

3, 믿지도 가지도 말아야 할 자들 이있다 .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며 자기들에게만 와야 된다 하여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또는 광야에 있다, 골방에 있다 하면서
미혹하는 거짓그리스도 들과 거짓 선지자(종) 들이 많이 일어 날 터이니 그런 자들은 믿지도 가지도 말라 하셨다 (마 24 : 23-28).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기 까지 하는 종들 (자기는 참 종이라 하나 실상은 거짓 종인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참 종으로 믿고
따를 것이다)인데 왜 믿지도, 가지도 말라 하셨을까? 그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장소를 국한 하여 지정함은 틀린 것이며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주심은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다.
어느 곳에나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것이다.
거짓 자들은 다른 데는 없고 자기들에게만 있으니 자기들에게 와야 구원과 은사를 얻는다고 속이는 것이다.

번개가 나서 동편만 뻔쩍였다는 거짓말과 같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있는 곳에만 와야 된다는 자들은 전부 거짓 선지자들 곧 거짓 종인 거짓 부흥강사, 거짓목사,
거짓 기도원 이라는 말씀이다. 그런데는 믿지도 말고 가지도 말아야 한다.

둘째 믿지도 말고 가지도 말라 하심은 매우 중대한 사실이 있다.
적어도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는 자들은 성령은 아니지만 힘이 있다. 그들에게 간 자들 중에 3종류가 있다.

그들의 힘을 받지 않게 되는 적은 수가 있고, 강력히 받아 사단의 사자(저들과 같은) 가 되는 자가 있으며
그 기운 만을 받은 자들이 대부분이다.
힘을 받지 않는 자들은 다행이나 위태로왔고 사단의 사자가 된 자들은 일생 거쳐지지 않으며 그 기운만 받은 자들도 맑고
성결한 성도가 되어 지는 일은 거의 없다.
그 기운을 받을 때 진동, 예언, 방언, 이상, 꿈등을 체험 하는데 처음에는 성령으로 믿었지만 차츰 성령이 아닌 증세가 나타난다.
곧 앞뒤 머리와 가슴, 그리고 팔과 다리로 그 기운이 전류와 같이 또는 쥐가 기어 다니는 것과 같이 그 기운이 통한다.
앞 이마로 그 기운이 올 때는 캄캄 하여 지며 오싹 소름이 끼치듯 떨기도 한다.
그리고 악하고 사나우며 물욕, 색욕이 발생한다.

저들이 다소 고쳐진다 하여도 마치 밥 지을 때의 설익은 쌀 같이 좋은 밥이 될 수도 없고
불기운을 입기 전의 쌀로 되돌아 갈 수도 없는 버린 쌀 같은 비정상의 인간아 된다. 매우 불행한 일이다.

셋째 동참 죄가 된다.

넷째 하나님은 자기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행하고 가르치지 않는 선지자들은 죽여 악을 제하라 (신 13 : 1-5) 하셨으니
더 말 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자기들에게만 성령의 은사가 있다 하며 자기들 있는 곳에만 와야 구원을 얻는다 하는 자들이면
어떠한 큰 표적과 기사를 보더라도 믿지도 말고 가지도 말라 하셨다.
참 하나님의 종 들은 [어디서든지, 누구든지, 죄를 회개 하고 복음을 믿으면 구원과 은혜를 얻는다고 하였다]고
외친다마는말세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 (신자들)들을 미혹 하리라 (마 24 : 11) 하셨으니
실로 주의 할 것이다

4, 신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을 말세 교회가 될 것을 성령이 밝히 말씀 하셨다 (딤전 4 : 1).
믿음을 떠남은 진리의 말씀 곧 성경을 읽고 믿어 행하며 가르침에서 떠남을 말하고,
미혹하는 영은 성령과 같이 나타나는 악령을 말하며, 귀신은 점 들린 사람들 모양으로 신을 말한다.
이 미혹의 영과 귀신을 성령으로 알고 받은 자들이 종의 이름으로 교회에 두루 다니며 미혹할 때
많은 신자들이 그들을 좇으며 따를 것이라는 말씀이니 참으로 주의 하여야 한다.

5, 안수 문제도 성령과 악령과 순 인간의 세 종류가 있음에 주의 하여야 한다.
현대 교계에 안수 문제가 소란한 물의 중의 하나가 되였다.

성령의 은혜로 된 안수는 귀하다.
초대 교회의 7 집사에게 안수 하였고 (행 6 : 6), 사도의 안수로 성령을 받았으며 (행 8 : 17),
아나니아는 바울을 안수 하였고 (행 9 : 17-18), 안디옥 교회의 선교사 파송 때 안수 하였으며 (행 13 : 3),
바울의 안수 때 성령으로 각 나라 방언과 예언을 하였고 (행 19 : 6), 디모데에게 안수 하였으며 (딤후 1 : 6),
히브리서 기자도 안수를 언급 하였고 (히 6 : 2), 손을 들고 기도하라 하였으며 (딤전 2 : 8),
안수 때 예언으로 주신 은혜도 있다 (딤전 4 : 14).
예수 께서도 소경의 눈에 손을 대사 뜨게 하셨고 (마 9 : 29-30, 막 8 : 22-26),
승천 하실 때에도 손을 들어 축복 하셨다 (눅 24 : 50-51).
이와 같이 안수는 매우 귀하다. 그러나 안수를 경솔히 하지 말라 (딤전 5 : 22) 하셨으니 함부로 하여서는 안 된다

(2) 악령으로 된 안수에도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영과 또 인간의 기합술적인 기운이 통한다.
그리하여 미혹의 영과 귀신에 의한 신비를 행한다. 여기에 모두 유혹 된다.
그 기운에 걸리지 않는 자는 극히 적고 강력히 접 한자는 또 하나의 거짓 선지자가 되어 미혹하는 자가 되고
그 기운만 받은 자들은 본 3 항에서 말 한 대로 버려진 인간이 된다.

(3) 순 인간의 안수에도 각양 인간 신비의 체험자의 안수도 있다.
약간의 진동 방언 예언 정도의 체험으로 하는 자도 있으며 전혀 신비의 체험이 없는 자들도 있다.
대개 이들은 안마 또는 안찰 또 안수 그리고 때리며 사람을 타고 앉아 공갈 협박도 한다.
그 중에 죽은 자들도 생기는데 저급한 악령의 신비를 체험한 자들로 때로는 이런 방식을 쓴다.
이때에도 기적이 있을 수 있다

예수께서 이 같은 기적을 행하는 자들을 알지 못한다 하시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 언명 하셨다 (마 7:21-23).
이런 때의 이적은 혹은 전류의 열이 병을 고칠 수도 있고 그 보다는 안수 받는 자신이 안수 받으면 나을 것이라는
자기 믿음대로 이루어지는 편이 많다. 또 병이 나으려 할 때에 안수를 받음이 되는 것도 있다.

악령의 신비가, 인간의 신비가 들에게 안수를 받아서는 않된다. 그 기운이 통하기 때문이다.
극히 주의 하여야 한다.
그들의 영, 그들의 정욕, 그들의 혈기와 악이 함께 통하여 들어오는 위험이 많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말한 거짓 선지자들을 믿고 따르며 좇는 신자들은 믿음(성경)에서 떠난 자들, 진리(성경)를 사랑 하지 않고
그 불의 (신비)를 좋아하는 자들이라 (딤전4 : 1, 살후 2 : 8-12, 신 13 : 1-5) 하였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 하며 입에서 떼지 말고 지켜 행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심 노력 하면
그것이 제일이며 다이며 또 필요 하시면 모든 신령한 체험을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6, [성경만 보면 무엇 하나 나의 직통 묵시를 듣고 예언 방언이 제일이야] 하는 자들이 많아 다니고 있다.

저들은 다 거짓 종 들이다.
저들은 옛날 바리세 교인들이 성경을 안다 하며 예수를 잡아 죽였다는 것과, 또 신자들이 성경을 조금 읽어 보았으나
뜻도 잘 모르겠으며 취미도 없고 골치만 아파 별 수 가 없다 하는 그 마음과,
또 신기 한 것을 좋아하는 인간 심리를 들여다 보고 꾀어내는 거짓 자들이다. 가소롭고 가증 가증한 자들이다.
그들의 말대로 옛날 예수를 잡아 죽인 바리세 교인은 바로 자기들 이다.
성경을 가르치면서 행하지 아니하고 권위와 물욕에 눈이 어두워 예수를 죽였다.

저들이 성경을 가르치면서 [성경만 보면 무엇 하나 내 새 묵시와 예언 방언이 제일이야] 하며
물질과 지위 욕에 선배도 없이 중상, 모략과 저주와 공갈 협박을 일삼는 바라세인 교인보다
더 악질인 자신임을 자신이 알 것이다.
옛날 바리세교인의 때 참 종 곧 사도들은 성경만을 중심 하여 순종 하던 사람들 이었다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 가운데 그 말씀을 읽고 묵상 하며 바로 깨달은 대로 순종하며 가르치는 자가 참 종이요
입으로 가르치고 행함이 없는 자들 (마 7 : 21-23)을 불법을 행한자
곧 거짓 종으로 구원을 얻지 못 할 자들이라 말씀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거짓 자들은 아예 [성경만 보면 무얼 하나 새 묵시를 듣고(묵시도 아닌 것을)
예언과 방언 (성령으로 된 것이 아님)을 해야 구원을 얻는데 내게만 와야 얻고 다른데 가면 망한다) 고 선전한다.
성경보다 자기 묵시와 예언 방언 등을 내세워 유혹 한다.
또 저들은 성경을 거스리는 미혹하는 영을 받은 자들 이어서 자연히 성경을 싫어한다.

성경을 안다는 것이 바르지 못 하여 혹시 바르게 안다는 것이 있으면 들은바 본바에서 도적질 하여 써 먹는 정도 이고
자기가 확신 하거나 또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없다.

신자들이 성경을 읽고 바로 알면 자기들의 정체가 들어나 더 속일 수 없을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신자들은 성경에서 보다 자기 말만을 절대로 믿어 복종하게 한다.
성경 안에 [하나님이 가라 사되] [예수 가라 사되] [성령이 가라 사되] 곧 삼위 하나님이 가라 사되가 있거늘
현대 거짓 종들은 하나님이 가라 사되가 기록된 성경보다 자기 가라 사되를 믿고 따라 오라 한다.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거짓 자들의 소행이냐?.
우리는 하나님 말씀 곧 신 구약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지켜 순종하며
이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성경을 읽어 보았으나 별 신통치 않다는 자들에게 물어본다.

과연 얼마나 읽어 셨는지, 몇 번이나 통독 하였는지 알고 싶다. 성경은 진리 이면서 또한 하나의 성문(聖門)장이다.
읽어 대의와 문단과 단어를 먼저 알아 우선 문장으로나 알아야 한다.
그 후에 신령한 뜻을 알게 된다, 세상 문하도 대학까지 근 20년을 공부 하여도 당장 위대한 문학자가 돼는 것은 아니다.
더 공부 하고 연구를 쌓은 후에 비로소 하나의 문인이 된다.

성서도 읽고 또 읽어 그 문장을 앎에 이르고 거기서 진리의 앎에 이른다.
성령의 감동으로 알게 된다 하여 읽지 않고 알게 되기를 기다린다면 불쌍한 일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어도 별 수 없더라 하지 말고 알기 까지 읽으며 아는 대로 실천 순종 할 때
그야말로 신비한 모든 체험을 바르게 하게 될 것이다.

예언 방언이 제일 이라 하지만 그 예언 방언이 성령으로 되었어도 사랑보다 못하며 (고전 12 : 28, 13:2),
천국에서는 성경을 가르치며 행하는 자들이 크다 (마 5 : 19) 는 예수의 말씀이고 보면 더 말 할 것도 없다.
이 같이 예수를 전 한다는 자들이 거듭 말하거니와 예수의 말씀과 정 반대(성경을 행하고 가르침이 제일 크다는 예수의 말씀에
저들은 예언과 방언과 자기가 받은 묵시가 제일이라 함) 되는 말을 하는 자들이 반 그리스도요 적 그리스도며 거짓 종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니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많다 함은 바로 저들을 말 함이다.
현대 교회에 많이 일어나 많은 신자들을 미혹한다. 특이 주의할 일이다.

7, 찬송 과 기도 때에도 주의 할 점이 많다

특히 찬송과 기도는 성령으로 (유 : 20) 하나님께 드려야 하며 인간의 감정과 흥분으로 해서는 안 된다.
성령의 감동으로 힘찬 찬송과 열열히 호소하는 기도와 또는 박수 치며 춤을 추는기쁨의 감격과 감사가 물론 있다.
이들은 거룩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승리를 얻은 자 들이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는 성령이 아닌 인간의 감정을 흥분케 하는 찬송과 기도가 도처에 가득 하다.
악을 쓰듯 신령함이 없는 고함으로 머리와 몸과 팔을 천박하게 흔들어 자기감정에 도취 하다가 질식하여 입신 비슷한 상황에 이른다.
혼돈된 질식에서 꿈처럼 보고 들은 것을 묵시 받았다 가장 한다.
저들은 육체에 속하여 싸우며 탐하고 파를 만들어 모든 죄를 범한다.
그들에게는 찬송과 기도가 하나의 진언과 주문으로 대용된다.

그 때의 태도는 하나님 앞에 용납 될 수 없는 난동이다.
발악적인 고함과 머리와 두 팔과 몸의 동작이 거룩 치 못하여 사람들 앞에서도 가질 수 없는 천하고 추한 모습이다.
실로 가증하고 가련한 일이다.
성령으로 찬송과 기도하는 성도들은 힘찬 찬송과 호소하는 기도에도 거룩과 단정함과 높은 인격이 항상 수반 된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기 때문이다 (요 4 : 23-24).
주의할 일이 한이 없을 것이다마는 본 항에서 그 중요한 얼마를 말하였다.
성도들은 깊이 주의 하여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게 되기를 빈다.

끝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은 성령의 9 은사와 그 보다 더 귀한 사랑의 은사와 그 보다 더 큰 말씀(성경)의 은사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힘입어 바르게 얻는 일에 이 적은 책자가 도움 되기를 비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