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3월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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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홍수와 바벨탑

  그렇게 내려오다가 노아의 홍수사건이 터지는데, 한자(漢字)에는 노아의 홍수에 관한 글자가 많이 있습니다.

  “곧 그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창세기 6장 13절)” 성경(聖經)에는 노아의 홍수때 여덟 명이 거대한 배에 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작은 배를 뜻할 때는 배 주(舟)자를 쓰는데, 보트에 쭉 그인 것은 ‘노’이고, 양쪽으로 사람이 앉아서, 노를 젖는 모습입니다. 보트(舟)에 여덟(八) 명의 입(口)이 탄 큰 배를 뜻할 때, 배 선(船)자를 그리고 노아와 그의 가족 여덟 명이 탔다는 것이 한자(漢字)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7장 18절에 보시면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위에 떠 다녔으며” 방주는 노도 없이 떠다니던 거대한 배였습니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이 떠내려 갈 연(沿)자를 만들 때, 이 ‘파도치는 물( )에 여덟(八) 명의 입(口)이 탄 방주가 떠내려 다녔다’ 라고, 노아의 여덟 명의 가족이 정처 없이 떠내려가는 모습을 그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방주는 정처 없이 떠내려 가다가 하나님의 뜻으로 터키의 아라랏 산(山)에 도착하였습니다. 5200미터 정도 되는 굉장히 높은 산입니다.

  그 아라랏 산에 얽힌 한자도 많습니다. 창세기 8장 3절-4절에 보시면,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하고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이 사실을 중국사람들이 한자(漢字)로 만들면서 여덟 명이 탔던 배가 거대한 바위반석 위에 앉았다 라고 해서 반석 반(磐)자입니다. 그 반석이 바로 아라랏 산입니다. 그 아라랏 산(山)에서부터 사람(人)들이 내려 왔는데, 인류의 조상이며, 신선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선 선(仙)자입니다. 그리고 방주(舟)에 여덟(八) 명이 탔다는 노아 홍수 얘기를, 사람들이 모여 앉기만 하면 이 이야기를 하고, 또(又) 했기 때문에, 이것이 곧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반(般)자가 되었습니다. 영어로 ‘generally speaking’입니다.

  아라랏 산에서 내려와서 장자권자(長子權者)인 셈의 자손들은 산(山) 근처에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머물렀을 겁니다.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 즉 ‘산(山)의 하나님’이라는 말만 봐도 초기의 노아 후손들이 아라랏 산 근처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섬긴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벨탑 사건 이후 중국으로 이주해간 사람들에 의해 ‘샹따이(上帝)’ 하나님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막내로 내려 갈수록 점점 자유분방하게 메소포타미아의 시날 평지로 내려와서 농사지어서 장자권자(長子權者)에게 바치며 살았을 겁니다. 가을 추(秋)자를 보시면 벼이삭 익은 모습(禾) 그대로 인데, 그것을 불(火)에 밥해먹는 때가 가을(秋)입니다. 장자권자(長子權者)는 하나님께 좋은 말하고 하나님께 아우들의 복(福)을 빌고, 아우(弟)들은 활 매고 다니면서 여러 짐승들을 잡아오고, 농사지은 것의 일부를 형(兄)에게 바치고, 형은 그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며 살아오다가,

  장자권자(長子權者)이고, 하나님을 직접 만난다는 교만에 빠져 기세 등등하여진 형들이 동생들을 점점 압제(壓制)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생들이 가을(秋)만 되면 근심부터 하게되었습니다. 근심 수(愁)자를 보시면 가을 추(秋)자와 마음 심(心)자가 합쳐져 있습니다. ‘마음이 가을에 가 있다.’ 가을만 생각하면 ‘못된 형들이 산에서 내려와 농사도 잘 되지 않았는데 모두 빼앗아 가겠구나!’ 근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생(弟)의 얼굴에 물( )이 흘렀으니 이것이 눈물 체(涕)자입니다. 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걱정하기 시작하자, 많은 동생들의 부인들이 서너 명씩 모여서 “형님들만 남자고 당신은 남자가 아니냐? 언제까지 당하기만 할거냐?”하면서 형에게 덤벼들자고 모의를 해서 간사할 간(姦)자를 보면 여자(女)가 수두룩하게 모여있는(女 女 女) 것입니다. 그리고 말은 형(兄)만 해야 되는데, 형이 알아서 복을 빌어야 하는데, 형(兄) 앞에 나타난 입(口)은 형(兄)에게 대들고자, 저주하고자 나타난 입입니다. 이것이 저주할 주(呪)입니다. 한자의 기원에는 이와 같은 인류역사의 흐름이 다 쓰여 있는데, 성경(聖經)을 모르던 한문학자들은 이 사실을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동생들은 어느 날 대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노아의 막내아들인 ‘함’의 아들이 ‘구스’이고, ‘구스’의 넷째 아들 ‘니므롯’이라는 그 시대 최고의 영걸(英傑)이 태어나서 모든 동생들의 집안을 규합해서 형들의 집안을 쳐부수고, 니므롯 제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전쟁에서 져서 죽거나 장자권(長子權)을 빼앗긴 것을 너무나 부끄럽게 여기다가, 바벨탑 사건 이후 하나님의 땅인 메소포타미아를 떠나서, 해 돋는 나라 동방으로 동방으로 머나먼 대장정을 거쳐, 만주(滿洲)의 하얼빈 부근에 도착해서 송화강, 즉 아리라 유역에 신시(神市), 즉 하나님의 나라를 베풀고 “널리 인간을 유익하게 잘 살아가자.”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뜻, 즉 ‘아가페 정신’으로 세운 나라가 고조선(古朝鮮)을 중심으로한 대(大) 동이족(東夷族)의 국가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떠나는 기점이 되는 사건이 바로 바벨탑 사건입니다. 바벨탑을 쌓아 올리다가 수많은 말로 갈라지고 흩어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한자(漢字)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창세기 11장 1, 3, 4절에 보시면 ‘온 땅의 구음(口音)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서로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이 광경이 한자(漢字)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합할 합(合)자는 인간(人)의 입(말, 口)이 하나(一)여서 모든 인간이 힘을 합(合)하여 하나님께 반역하는 일을 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탑 탑(塔)자를 보시면, 인간의 입이 하나로 뜻을 합(合)해 흙(土)에 풀( ), 짚을 넣고 말려서 벽돌을 만들어 쌓았더니 바벨탑이 되었더라, 이렇게 탑 탑(塔)자에 바벨탑 사건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저주가 임했습니다. 창세기 11장 9절에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난리를 뜻할 때 ‘입을 천(千) 개의 입(口)으로 굽혀 버렸더니 난리가 저절로 나더라.’ 이것이 어지러울 란( )자입니다. “벽돌 한 장 올려줘.”하니까. “What did you say?” “!(도모 와까리마셍: 도무지 모르겠다는 일본어)” 이러니 난리가 났겠죠. 그래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뿔뿔이 흩어져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동방으로 이동할 때 셈족만이 아니라 약간의 함족과 야벳 족속들이 함께 이동을 해왔습니다. 중국사람들은 야벳족이고 우리 한국사람은 셈족인데, 그 이동하던 모습을 그대로 한자에 그려놓았습니다. 창세기 11장 9절에 “여호와께서 거기(바벨)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중국 사람들은 동방으로 왔기 때문에 옮길 천(遷)자를 만들 때 서(西)쪽에 거대(大)한 분산( )이 일어나서 걸어서 걸어서( ) 왔노라. 중국에서 볼 때 메소포타미아는 서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가족(家族) 안에서는 말이 바뀌지 않도록 혈연관계를 고려해서 말을 갈라놓으셨습니다. 흩을 산(散)자를 보시면 모두 함께(共) 가족 단위( )로 따라서( ) 왔노라, 흩었다는 것의 기본단위는 가족(家族)이었습니다. 서쪽에서부터 대장정의 길을 걸어서 중원(中原)대륙까지 왔다는 것이 한자(漢字)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