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4월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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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맺 음

  요한계시록 21장 6,7절 22장 1절을 보시면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생명수의 강물을 누구든지 값없이 마시게끔 했던 이것이 중국인과 멀리 떨어진 메소포타미아에 남아있던 유대인에게 내리신 계시였는데, 앞 장에서 보신 영원할 영(永)자와 목숨 수(壽)자 속에 그 계시가 그대로 들어있는 것입니다.

  또 계시록 7장 10절, 22장 3,5절을 보시면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이 말씀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어렵고 힘들고 한 많은 세상에 믿음을 잘 지키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실 기쁨의 선물로 생각하고 살고 있죠. 그런데 중국사람들이 그대로 그 생각을 알고 있었습니다. 구원할 광(匡)자의 갑골문자는 강력한 옹벽이 둘러싸서 보호를 하고 있고 한 중간에 양(羊)이 앉아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양, 그 바깥의 단단한 성벽(城壁) 안에, 믿는 우리들을 모아서 세세토록 왕노릇 하며 살리로다, 이와 같이 중국사람들과 히브리 사람들의 생각이 똑같았습니다.

  오늘날 중국의 모습입니다. 수십 억의 인구가 살고 있는 중국은 최초의 조상 요(堯), 순(舜)임금 때부터 산(山)의 하나님, 샹따이(上帝) 하나님을 잘 섬겼으며, 그들의 조상은 그들의 글자 속에 자기들이 지었던 죄악과, 흘러갔던 역사와, 앞으로 다가올 구원의 약속까지도 글자에 새겨서 수천 년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중국에 선교하러 들어갔던 서양의 선교사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 하고 두루두루 알아본 결과, 옛날부터 상제(上帝)하나님이란 개념으로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두말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이란 이름을 상제(上帝)라는 이름을 써서 중국어(中國語) 성경(聖經)에 그대로 인쇄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중국어(中國語) 성경(聖經) 창세기(創世記) 1장1절-2절을 그대로 써놓은 것입니다. 太初上帝創造天地 地是空虛混沌 深面黑暗 上帝的靈運行在水面上 이것을 한문 읽는 방식으로 운률을 얹어서 읽으면 제사문(祭祀文)처럼 되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선교사들이 하나님을 이름을 상제(上帝), 즉 ‘샹따이’로 기록하는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썼습니다. 중국인의 정서에 그대로 와 닿았기 때문이죠. 한자와 창세기를 비교 분석해 볼 때 고대(古代) 중국의 조상들은 중동(中東)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바벨탑사건 이후 동쪽으로 동쪽으로 대장정을 행하여 중원(中原) 대륙(大陸)에 도착한 사람들이 분명하며, 이들은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을 잘 섬기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만리장성에 싸여 있는 수많은 중국인들을 기억하시고, 그 영혼들을 위해 중보기도해 주시고, 중국선교를 위해서 다같이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자에 나타난 창세기’ 이것으로 중국선교에 큰 도움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주변사람들에게도 드라마틱한 한자(漢字) 몇 가지로 하나님을 전도하시는데 사용하시면 유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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