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원목사 소개

 최정원(崔正元) 목사님은 한국 기독교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 쓰임 받은 큰 목자 였습니다. 1911년에 태어나신 목사님은 어릴적부터 특별한 영적 능력으로 참 하나님을 증거 하셨고 많은 사람을 미혹의 영으로부터 해방 시켰습니다.

일제시대 때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 교단들은 신사참배를 하였으나, 최정원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투옥되시면서 신사참배를 거부한 목회자가 신사참배를 한 주류들 사이에서는 기득권을 유지 할 수 없었던 안타까운 현실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가지 사정으로 함께했던 성결교와 분리하여 임마누엘 예수교 교단을 창설하고 1950년대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공평동교회, 칠성동교회, 비산동교회, 봉산교회, 남덕교회, 동성교회, 포항중부교회등 여러 교회가 설립되었고 현재 대신대학교의 전신인 대구신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당시 최정원 목사님은 명성 그대로 전국에서 청함을 받고 있는 유명한 부흥강사였고 신학교수였습니다. 친히 개척해 세운 공평동교회는 성경박사로 통하는 최 목사님이 세운 신학교와 함께 소문난 교회라 전쟁과 가난으로 찌든 소망없는 서민들에겐 큰 위로와 소망이 있는 복음의 현장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세운 신학교는 당시로서는 대구 유일의 정부(문교부)인가 신학교로서 교파를 초월해 전국에서 영혼이 갈급하고 전쟁에 시달리던 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시내에 있는 큰 장로교회에 나가는 현직 집사와 장로는 말할 것도 없고, 기업을 이루고 있는 공장장들에 이르기까지 계층을 초월해 청년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 학교는 후에 대한 예수교 장로회 신학교(합동측)와 재단이 합해져 대신대학교(경산 소재)로 병합되었지만, 6.25 전쟁이 막 끝나고 혼란한 와중에서도 대구와 경남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로는 호남지방에서까지 성경을 잘 가르친다는 최정원 목사님의 소문을 듣고 젊은 기독청년들이 모여들었었습니다.
당시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목사님은 기도할 때 눈을 뜨고 오늘날 겟세마네 동산을 배경으로 한 예수님처럼 고개를 들고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마주잡고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한번은 새벽기도회 때 당시 신학교 학생들이 최 목사님을 시험하기 위해 어느 간 큰 학생(김O규 목사 증언, 현 예장통합 은퇴목사)이 살금살금 기어나가 그가 기도하는 얼굴 앞에 오른손을 들고 슬쩍 지나쳤는데 눈 한번 깜짝하지 않더라고 했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신학생들 사이에는 진짜목사라는 별명이 나돌았고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고 합니다.

이후 일부 교회들과 제자들을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측, 합동측)로 아무 조건과 욕심 없이 보내 주셨고, 서울 반석교회를 지키시던 최정원 목사님께서는 2010년 3월 26일 향년 99세의 나이로 육신을 떠나셨습니다.
한민족의 격동기에 태어나시어 황폐하고 척박한 이 땅에 믿음의 싹이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명을 성실히 감당하신 목사님, 세상과 상관 없이 언제나 하나님이 주신 겸손으로 청지기의 사명을 떨리는 손으로 행하신 목사님을 잃은 안타까움이 슬픔보다 더 크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참 증거자, 최정원 목사님!,
영원한 시간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